사회 사회일반

독일국민, 히틀러와 공모?

■ 집단애국의 탄생 히틀러 (라파엘 젤리히만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강한 종(種)이 약한 종을 몰아 낼 것이다. 이른바 '개체의 인간성'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족쇄를 파괴하고 강자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약자를 파괴하는, '자연의 인간성'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1929년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에서 독일의 총통 히틀러는 정신분열증환자, 장애자, 간질환자, 기형아 등을 '무가치한 삶'이라고 내몰고, 안락사도 불사할 것이라고 연설했다. 독일에서 소수인종으로 의사ㆍ과학자 등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던 유대인들도 히틀러의 눈에는 제거 대상이었다. 게르만 인종을 강하게 만들고 독일을 세계 최강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후 독일 정부는 정신질환자를 국가 관리 시설로 이송하고 장애인들에게 불임시술을 강요했으며, 1차 대전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안락사시키는 등 체계적인 집단 학살을 자행했다. 그러나 내부로부터 아무런 비판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생체실험, 대학살을 포함 전쟁으로 무려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독재자 히틀러의 광기어린 만행은 어떻게 자행되었을까. 독일의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라파엘 젤리히만은 독재자를 만들어 낸 7,000만 독일 국민의 맹목적 민족주의적 애국주의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았다. 저자는 히틀러에게 '애국'이라는 이름을 걸고 집단적으로 충성을 맹세한 독일 국민의 사회ㆍ심리학적 상태를 파고 들었다. 책은 히틀러의 독일 정치계 입문 이후부터 최후를 맞기까지 행보와 2차 세계 대전의 전개과정, 독일과 유럽 국가들 간의 복잡한 관계를 분석하며 히틀러와 독일 국민의 애국심이 어떻게 공명(共鳴)하며 비극적인 종말로 치닫는지를 연대기 순으로 서술한다. 역사적 인물 중 히틀러 만큼 주요한 연구대상이 있을까 만은, 책은 히틀러의 삶 보다는 그 뒤에 가려 있던 독일 국민을 부각시키면서 다른 책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저자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전에 '독일인들이 민주적 선거에서 왜 히틀러를 선택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했다는 민족적 굴욕감과 1차 세계 대전 패망이후 미래가 불투명했던 독일 국민들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고 히틀러가 던진 '애국'이라는 '밑밥' 아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였다는 설명이다. 거기에다 독일 근대화의 기수로 최대의 수혜를 누렸던 '공공의 적' 유대인들을 처단하자는 히틀러의 주장은 독일인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전체 독일 인구의 0.7%에 불과한 유대인이었지만, 독일인 노벨 수상자 중 25%, 판ㆍ검사의 6%, 의사의 7%, 언론인과 작가의 8%, 백화점 유통망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게르만 민족에게는 눈엣가시였다. 절망에 빠진 국민들에게 적을 만들어 그들을 향해 불만을 드러내도록 부추긴 히틀러는 인종정리를 통한 모든 악의 근원을 뿌리뽑아야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고 선동했다. 1919년 100여명의 당원에 불과했던 독일 노동자당(일명 나치당)은 1922년 4,000명으로 1923년에는 6만명으로 늘어났다는 것은 히틀러의 선동이 국민들에게 통했다는 증거다. 저자는 독일국민과 히틀러의 공모과정을 추적하면서 집단적ㆍ광신적으로 표출되는 이성을 잃어버린 집단애국주의를 성찰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독일 민족의 혁명'을 표방했던 히틀러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고 범죄행위도 묵과하며 맹목적으로 따랐던 독일 국민의 뼈저린 반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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