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부자동네 가난한 동네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담론은 더불어 사는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것 아닌가 싶다. 얼마 전까지 소통과 상생이 강조되더니 동반성장ㆍ공생발전 등 어려운 '관제용어'들이 속속 화두에 오른다. 정치권에서는 복지논쟁이 한창이다. 재계 등 민간 차원의 개인 기부도 줄을 잇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압축 고도성장 과정에서 앞만 보고 달려온 것에 대한 사회적 반성의 징표다. 이제 우리 사회가 결과 못지않게 과정을 중시하고 성장의 빛에 가려진 사회의 그늘진 곳도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소셜믹스 확대에 대한 도전 사실 그동안 양적 성장을 통해 얻어진 열매는 소수가 독차지했다. 소수에 축적된 부(富)는 도심 특정 주거지와 신도시 개발의 바탕이 됐다. 그 과정에서 도시가 부자동네, 가난한 동네로 갈렸다. 이는 이미 위험수위에 달한 사회 양극화와 오버랩되면서 계층갈등ㆍ이념대립의 씨앗이 됐다. 사회균열의 독버섯이 자라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는 정부 주택정책의 중요 관심사다. 그 대표 사례가 소셜믹스(social mix)다.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아예 한 단지에 골고루 배치해 서로 다른 계층이 공존하도록 하는 데 취지가 있다. 부자동네, 가난한 동네의 경계를 다소나마 허물어보겠다는 시도이다. 소셜믹스는 노무현 정부시절 은평뉴타운ㆍ판교신도시 등에 본격 도입된 뒤 이명박 정부 들어 보금자리주택단지로 확대됐다. 그런 소셜믹스가 최근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보금자리주택은 소수에만 '로또의 행운'을 안겨준다. 그런데도 이른바 '반값 아파트'의 매력에 무주택자들의 환영을 받는다. 반면 유주택자들로부터는 기피와 원망의 대상이다. 임대단지 슬럼화 우려로 마치 혐오시설 취급한다. 일부 유주택자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임대주택 입주자들을 대놓고 멸시한다. 한마디로 임대주택 사람과는 이웃이 되기 싫다는 뜻이다. 그러니 임대주택자 입에서 자신의 신세를 애완동물만 못하다는 자조까지 나온다. 애완동물이 아무리 '반려동물'로 신분 상승해 상팔자를 누리는 세상이라지만 뭔가 한참 잘못됐다. 임대주택 입주자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보금자리주택 건설에 대한 집 주인들의 집단 반발로 나타난다. 실제로 경기 과천과 서울 강동구 고덕ㆍ강일 등 보금자리지구 인근 집 주인들은 시장 주민소환, 주민공람 거부 등의 방식으로 지구지정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보금자리주택단지가 주변에 들어서면 주거환경이 열악해져 결국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물질 만능시대의 이기심과 탐욕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이런 집단 이기주의에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주무부처도 두 손 들었다. 특히 과천의 경우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 압박이 이어지자 시와 국토해양부가 '공급 가구 절반 축소'로 물러섰다. 강동구 보금자리주택단지의 공급 가구 수도 줄어드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비장한 전사처럼 보였던 권도엽 국토부 장관의 호기도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지난달 초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욕을 얻어먹더라도 꼭 해야겠다"며 보금자리주택 '님비현상'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또 정면으로 맞설 태세였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둑 하나가 터지니 제방 전체가 무너지는 듯 하다. 자칫하다간 더 큰 계층갈등의 쓰나미가 덮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슈퍼부자들이 근래 너도나도 자발적으로 정부에 증세를 요구하고 나서 주목을 받았다. 부유층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현행 체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사회 갈등과 대립을 사전에 막아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우리 사회도 앞으로 계층갈등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면 집주인 등 여유 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실천이 필요하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작은 이웃사랑이 그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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