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유한한 행성이다. 이 안에서 70억에 이르는 인간은 지구의 자원을 끊임없이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산업이 발전하고 소비가 늘어나면서 한정된 자원은 점차 줄어들고 용도를 다한 재화의 폐기물은 점점 쌓여만 가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지금 이대로의 행보라면 머지않아 걷잡을 수 없는 황폐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한한 성장이 아닌'지속 가능한 삶'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목소리지만,
경제 선진국 중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불가능함을 인정한 예는 없었기에 그 의미가 새롭다.
책은 영국 정부 산하'지속가능개발위원회'소속 경제위원이 썼다. 저자는 이미 생태계 한계와 부존자원(한 나라가 가진 인적·자연 자본 등 총칭) 한계를 더는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 지금과 같은 성장 속도를 유지해서는 모두가 파멸로 접어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현재의 경제체제는 번영을 위해 맹목적 경제성장에 매달려 왔다. 지금까지의 경제성장은 끊임없이 경제주체들의 부채와 소비수요를 증대시키며 달성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 임계점에 도달했다. 알맹이 없는 번영이 될지, 지속 가능한 번영이 될지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저자는 많은 이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탄소 배출권 시장을 형성하거나 환경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생태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선진국의 탄소 배출량 감소는 공장의 해외 이전과 국경을 넘나드는 무역을 통해 이룬 것이지 탄소 배출량을 근본적으로 감소시킨 게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저자는"지금의 경제구조에 변화를 꾀하고 우리를 소비주의 철창에 가두는 사회논리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는 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고 역설한다. 산업문명에 대한 도덕적 비판에만 머물지 않도록 저자는 현존하는 경제의 작동을 조절할 수 있는 대안적인 거시경제 모델까지 제시한다.
지속적인 소비성장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안정을 실현하고, 경제활동이 생태 한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하는 거시경제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생태학을 결합한'생태거시경제학'을 청사진으로 내놓는다.
"새로운 거시경제학의 변수 중에는 경제의 에너지 및 자원 의존도와 탄소 한계를 반영하는 변수가 분명히 포함될 것이다. 또한 생태계 서비스나 자연자본의 가치를 반영하는 변수가 포함될 것이다. (중략) 무엇보다도 새로운 거시경제학은 경제를 사회와 환경에서 분리시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학문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할 것이다."(본문 184쪽)
책은 영국의'지속가능개발위원회'가 지속가능성과 경제 성장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진행한 광범위한 연구의 총집합체라 할 수 있다. 위원회에서 만든 같은 제목의 보고서를 토대로 일반 독자를 위해 새롭게 옷을 갈아 입혀 책으로 소개했다. 이미 보고서는 9년이라는 위원회 역사상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후 책으로 출간돼 이미 스웨덴, 독일, 프랑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중국 등 14개국에 소개되기도 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아닌 지속 가능한 경제를 고민하는 상황, 자멸이냐 전환이냐는 선택의 갈림길 놓인 현 시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좋은지 알려주는 척도가 된다. 1만 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