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박형수 통계청장

통계 패러다임 대수술… 현실 반영한 지표로 국민체감도 높일 것

단순 설문·방문조사 벗어나 행정데이터·민간기업 정보 접목

빅데이터 활용한 지역 소비지표 개발해 내수 활성화 지원

통계 시스템 개편 일관성 갖고 추진… 로드맵 만들어 공개



"이제 통계의 패러다임이 변해야 합니다. 통계의 수요가 질적으로 바뀌고 있어요." 각종 정부통계가 경제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논란이 거센 가운데 박형수(48·사진) 통계청장이 주요 통계제도의 대수술을 예고했다. 그동안의 통계조사 기법상 사각지대가 발생했던 부분을 행정 데이터, 민간기업 정보 등과 접목해 보완하고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창의적 지표 개발·개선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박 청장은 13일 서울 논현동 지방청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며 "국가통계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면서 이 같은 통계정책 보따리를 풀었다.

그는 "시대는 빠르게 변하는데 왜 정부 통계는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똑같으냐"며 "국민들은 통계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사회가 다변화하고 빠르게 바뀌면서) 통계에 대한 수요도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이 같은 수요에 맞춰 정보를 보다 폭넓게 모으고 융합해 창조적인 통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기존의 통계청 지표는 주로 현장방문·설문 등 조사자료를 중심으로 작성돼왔다. 그러다 보니 조사 대상에서 누락되거나 낮은 비중으로 포함된 계층이나 분야가 부득이하게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는 현실과 통계지표 간 괴리로 이어졌다. 박 청장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해 정부 통계가 현실을 보다 정확히 반영하도록 체감도를 높이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를 위해 그는 우선 정부와 공공기관 등에 반세기 이상 등록·신고돼 쌓인 행정자료 등을 통계청 조사자료와 접목하는 작업을 개시했다. 전문용어를 빌리자면 기존의 '조사 센서스' 체계를 '등록 센서스' 체계로 다변화하겠다는 말로 함축된다.

박 청장은 "우리나라는 지난 1925년부터 인구 센서스를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조사 센서스가 통계작성의 중심이 돼왔다"며 "이를 내년부터 등록 센서스 체계로 바꾸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구 센서스 개시 이래 정확히 90년 된 통계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예를 들어 국민연령의 경우 과거에는 실제 나이와 호적 등 행정등록자료상의 나이가 차이를 보여 등록자료를 통계에 잘 쓰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는 행정 시스템이 발전해 행정등록 나이와 실제 나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소득과 재산 관련 자료도 마찬가지다. 통계조사원이 가정이나 업소·기업 등을 방문해 조사를 하면 응답자는 체면 문제나 세금부담 등을 우려해 실제보다 재산이나 소득을 과장하거나 축소해서 응답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조사통계자료는 현실과 동떨어질 수 있다. 이런 문제는 관련 행정당국이나 공공기관에 신고·등록된 행정 데이터를 활용해 보완하면 개선될 수 있다고 박 청장은 설명했다.

박 청장은 같은 맥락에서 앞으로 1년 내 한국형 지니계수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지니계수는 빈부격차 여부를 가늠하는 대표적인 지표로 꼽힌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기존의 전통적 지니계수가 불신을 사고 있다. 국민들이 느끼는 소득양극화는 한층 커졌는데 기존의 지니계수로는 우리나라 소득분배 수준이 양호하다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문제를 풀기 위해 통계청은 이른바 신지니계수를 발표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신지니계수 역시 고소득층의 실태를 제대로 담지 못해 정확한 빈부격차 수준을 가늠하는 데는 한계를 노출했다. 이에 따라 통계청은 기존의 지니계수나 신지니계수를 보완해 한국형 지니계수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박 청장은 "신지니계수가 일종의 시제품이라면 한국형 지니계수는 완제품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개발방법에 대해서는 "국세청 소득세 자료와 사회보험 자료를 활용해 고소득층의 소득치를 보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역시 등록 센서스 방식을 접목하겠다는 뜻이다.

기존 지니계수나 신지니계수는 일정규모의 모집단 가구를 두고 그 중 무작위로 샘플 가구를 선별, 조사한 소득을 기초로 산정됐는데 고소득층은 모집단에서 샘플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확률상 미미할 수밖에 없어 통계의 대표성이 떨어졌다. 국세청이나 국민연금공단 등의 행정자료는 이 같은 허점을 보완해줄 수 있다는 게 박 청장의 견해다.

다만 박 청장은 통계 시스템을 개편하더라도 여론몰이에 휘둘러 급조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통계개편은 지그재그로 천천히 가더라도 꼼꼼한 설계로 정확성을 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같은 차원에서 박 청장은 "통계정책 로드맵을 만들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통계청 수장이 1~2년 사이에 수시로 바뀌고 정책여건도 계속 변해 통계체계가 긴 안목에서 지속적으로 개선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앞으로는 일종의 중장기 통계정책 방향을 수립해 청장이 바뀌어도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게 통계지표가 개선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박 청장의 처방이다.

국가통계가 국민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하는 방안을 소개해달라는 주문에 박 청장은 △국가통계 포털 코시스(KOSIS) △e나라지표 △삶의 질 지표 서비스 등의 통계 서비스를 들었다. 통계법에 근거해 현재 국가가 작성, 발표하는 통계는 총 923종이다. 하지만 국가 전반과 국민생활을 촘촘히 파악할 수 있는 통계가 많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이해하기 쉽고 친숙하게 접근하는 방법이다. 박 청장은 "코시스와 나라지표에서 볼 수 있는 각종 통계는 도표와 그래프를 보기 쉽게 꾸려 배치했다"며 "국가통계 소비는 일차적으로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하는 데 이용되지만 접근도를 높였기 때문에 최근에는 기업들이 마케팅과 제품개발 등에 적극 활용하고 일반인들도 창업이나 취업 등에 유용하게 쓴다"고 소개했다.

박 청장은 창의적 통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대 흐름을 반영한 통계가 제대로 된 정책의 발판이 될 수 있고 국민의 체감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새로운 통계자료원인 온라인 거래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슈별 소비심리 분석·예측 등의 통계지표 생산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많은 만큼 빅데이터 분석으로 기존에 제공하지 못했던 새로운 통계를 생산해낼 겁니다."


창의적 통계정책의 일환으로 박 청장은 행정통계뿐 아니라 기업 등 민간 부문의 데이터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온라인상의 상품가격 정보를 수집, 분석해 일일물가지수 같은 물가 관련 보조지표를 작성하는 시스템이 시험 운영되고 있다"고 예를 든 뒤 "하반기에는 통신사 데이터를 활용, 도시의 요일별·시간대별 이동인구 패턴 등을 분석해 정책적 지표로 활용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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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설명한 실업률과 관련해서는 "오는 11월에는 시간 관련 불완전취업자와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취업을 희망하고 취업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포함한 노동저활용지표를 공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저활용지표는 36시간 미만 취업자 중 추가 취업을 희망하고 취업 가능성도 있는 시간 관련 불완전취업자, 취업 가능성이 없는 구직자, 구직하지 않았으나 취업 가능성이 있는 사람 등을 포함한 '잠재노동력'을 현행 공식 실업자와 함께 고려해 실업률을 산출하는 지표다. 또 물가에 대해서는 "물가의 현실반영도를 높이기 위한 지수개편시 보조지표의 품목조정 등으로 체감도를 더 높이고 빅데이터를 활용한 보조물가 정보를 개발하는 등 정보공개 확대로 공식지표를 보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박 청장은 "경제 활성화를 위한 선제적 대응력을 높이고 내수 활성화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몇 가지를 더 준비하고 있다"며 "제조업제품공급동향지수와 제조업생산속보지수·지역별소비동향지표 등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자체 정책 지원을 위해서는 "시군구의 도시기본계획 등의 수립 지원을 위한 시군구 인구추계작성방법론과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끝으로 박 청장은 국가통계기관의 조사에 국민들의 적극적으로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최근 개인정보에 민감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인구 센서스와 사업체 조사 등을 진행할 때 어려움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박 청장은 "인구 센서스의 조사항목 중 개인적 성향에 따라 민감해하는 부분들이 있고 사업체 조사 과정의 경우 영업을 하느냐나 매출은 얼마나 되느냐 등의 물음에 흔쾌히 답을 듣기 어렵다"며 "통계청 조사내용은 개인정보보호법 제33조와 제34조에 의거해 철저히 보호되고 통계작성용으로만 사용되므로 안심하고 협조하셔도 된다"고 강조했다.

He is…

△1967년 전남 광주 △동신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경제학 박사 △1999년 한국은행 조사역 △2001년 한국조세연구원 전문연구위원 △2003년 조세연 동향분석팀장 △2005년 조세연 재정분석센터장 △2007년 조세연 기획조정실장 △2009년 조세연 재정분석센터장 △2011년 조세연 연구기획본부장 △2013년~제14대 통계청장



또 하나의 창조산업… 기법·서비스 수출 통한 국부창출 가능

■ 朴청장이 보는 통계는

권대경 기자

통계는 단순히 경제현상을 분석할 때 동원하는 보조도구일까. 이제는 아니다. 통계도 하나의 산업 분야로, 비즈니스로 당당히 성장하고 있다. 박형수 통계청장 역시 이를 꿰뚫어보고 있다. 그는 "이젠 통계도 창조산업 분야로 인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구글·오라클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은 적지 않은 인력과 자금을 들여 각종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빅데이터화해 사업 아이템으로 활용한다. 국내에서는 현대카드를 선두로 주요 금융사들이 방대한 고객들의 결제정보를 빅데이터로 활용해 가맹사업주 등에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민해왔다. 아예 통계 데이터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업체들도 적지 않다. 통계는 전후방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훌륭한 서비스 산업이고 무엇보다 기계로는 모두 처리할 수 없는 특성을 가져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

통계청은 통계 데이터를 활용해 국부창출의 기회를 열고 있다. 바로 통계산업 수출이다. 몽골과 카자흐스탄·스리랑카·라오스 등 주로 개발도상국의 국가통계 시스템 구축에 우리의 뛰어난 통계기법과 서비스를 전파한다. 박 청장은 "국제기구를 통해 아시아 국가에 통계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며 "이는 우리 정보기술(IT)이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 청장에 따르면 통계청은 지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형태로 310만달러 규모의 몽골 국가통계 시스템 강화사업에 참여했다. 이외에도 오는 2015년 상반기에 종료되는 1,038만달러의 카자흐스탄 국가통계 시스템 강화사업, 올해 마무리되는 스리랑카 통계청 통계 데이터베이스(DB) 및 서비스 시스템 구축 등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내년으로 예정된 라오스 국가통계 시스템 강화사업에 대해 박 청장은 "세계은행(WB) 기금이 투입되는 것으로 통계청은 2015년부터 참여할 예정"이라며 "거시경제와 빈곤 통계 개발, 정책역량 강화, 통계자료 공유와 접근성 개선 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대담=민병권 경제부 차장 newsroom@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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