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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칼럼] 留學과 遊學사이

[임종건 칼럼] 留學과 遊學사이 우리말 사전에 나와 있는 유학은 유학(留學)과 유학(遊學) 두 가지이다. 전자는 외국에 나가 공부하는 것이고, 후자는 고향을 떠나 공부하는 것이다. 미국유학이 먼저에 속한다면 서울유학은 나중에 속한다고 하겠다. 왜 국내의 대도시로 유학을 보내는 것이 놀 유(遊)자 유학인지는 알수 없지만 해외유학 보다는 ‘향토장학금’의 애환이 서린 국내유학에 좀더 여유와 낭만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개발연대 까지만 해도 해외유학은 가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힘들었고, 가더라도 장학금이 아니면 접시닦이 등 자력으로 학비를 벌어야 했으므로 놀면서 배운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말이다. 조기유학, 소비위축 한몫 망아지는 제주도로, 자식은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이 있는 나라답게 서울유학은 흔했다. 경제력과 서울에의 연고자 유무에 따라 유학을 보내는 학령(學齡)에 차이는 있었지만 두가지 조건이 튼튼할수록 자녀를 일찍 서울로 유학을 보냈다. 연고가 있으면 친척집에, 연고가 없을 경우에는 하숙이나 자취를 시켰다. 한국사회의 남다른 교육열에 바탕한 그 같은 유학전통은 변형과 발전을 거듭하며 연면히 이어지고 있다. 요즘 면 단위 초등학교엔 학생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농촌인구의 감소의 탓이 크지만 서울이나 지방 대도시 하다못해 군청소재지 학교로 자녀를 유학 보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학의 여건도 시골경제가 윤택해지면서 친척집이나 하숙집이 아니라 대도시에 투자목적을 겸해서 사 둔 집이나 원룸아파트에서 기거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국제화시대를 맞아 유학의 외연(外延)이 전세계로 확장됐다. 전세계에 나가있는 유학ㆍ연수생은 작년말 현재 16만명에 이른다. 대학졸업 후 해외유학을 가는 것은 고전에 속한다. 대학 재학중 1년 정도의 해외어학연수는 필수 코스처럼 되어 ‘5년제 대학’이라는 말이 생긴지도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해외유학 중에서 특히 경제ㆍ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초ㆍ중ㆍ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조기유학이다. 주위에서 자녀를 조기유학 보낸 사람을 찾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외국유학 보내기를 과거에 시골에서 서울로 유학 보내듯이 한다. 해외유학이 흔하다 보니 목적이나 씀씀이에서 본래 ‘留學’의 의미 보다는 ‘遊學’의 성격이 짙어졌다. 조기유학의 경우 국내유학처럼 하숙이나 친척집에 맡기는 것으로는 맘이 놓이지 않는다. 낯설고 물설은 이국에 어린 자녀를 보내는 것이므로 보호자가 따라가야 한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기러기 아빠다. 기러기 아빠는 한국에 혼자남아 번 돈을 외화로 바꿔 자녀의 학비 외에 아내의 해외생활비를 송금하느라 허리가 휜다. 지금 우리나라는 심각한 내수위축을 경험하고 있다.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가계의 지출능력 감소가 큰 원인이다. 해외유학의 보편화 정도에 비추어 볼 때 소비위축의 원인 중에서 유학ㆍ연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적지않아 보인다. 가정황폐 초래 안되도록 지난해 순수 학비인 해외 유학연수비 지급액은 18억5,200만달러로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여기에 보호자의 생활비를 포함한다면 지출규모는 훨씬 커질 것이다. 개인이 해외에 있는 가족 친척 등에게 대가 없이 보내는 돈인 증여성 해외송금액이 지난해 54억5,000만 달러에 이른 것이나, 미국에서 불고있는 한국인에 의한 부동산투기 열풍도 이 조기유학 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가정의 황폐화 문제다. 기러기 아빠의 이혼이나 자살이 차츰 사회문제화 하고 있다. 이 문제에 비할 때 해외유학으로 인한 국부유출이나 내수위축은 작은 손실에 불과하다. 논설실장 imjk@sed.co.kr 입력시간 : 2004-05-1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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