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기준지표를 변경할 것인가. 또 물가 목표를 얼마나 낮출 것인가.” 우리나라의 물가정책이 6년 만에 수술대에 올랐다. 지난 2000년 이후 물가정책의 기준지표로 사용돼온 ‘근원 인플레이션’을 석유류와 농산물 가격 등 가격변동성이 큰 품목이 포함된 ‘소비자물가지수(CPI)’로 바꿀지 여부, 여기에 2.5~3.5%인 중기 물가 목표를 얼마나 낮출지가 핵심이다. 새 물가정책은 내년부터 시행되는데 정책 변화에 따라 콜금리 등 경제정책 전반에 파급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12일 한국은행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두 기관은 이달 하순 나올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에 3년 단위의 중기 물가정책을 담기 위해 최종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핵심 쟁점인 기준지수를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치열한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다. 정부와 한은은 98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를 받아들여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 99년까지 소비자물가를 기준지수로 삼다가 2000년부터 근원 인플레로 바꿨다. 유류와 농산물의 가격 변동이 정책적으로 통제할 수 없어 두 부문을 뺀 나머지 요소만을 갖고 지표로 만든 것. 정부와 한은은 이어 2004년부터 올해까지의 3년 평균 중기 (근원) 인플레 목표를 2.5%에서 3.5%로 책정해놓았는데, 3년 주기이기 때문에 내년부터 적용될 새 목표치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 물가정책의 최종 책임을 진 한은은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국제유가 등 보다 현실적인 물가지표들을 담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차제에 CPI로의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통화정책 완화 기조의 축소(콜금리 인상)’라는 한은의 정책 방향과도 부합한다. 한은은 이달 콜금리 인상의 이유로 물가인상 압력이 고조되고 있다고 했지만 정작 기준지표인 근원 인플레는 월별로 1.6~2% 정도에 불과해 정책 목표(2.5~3.5%)에 한참 모자란다. 반면 CPI는 2.0~2.8%로 비교적 높은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때마침 이성태 한은 총재도 이날 창립 56주년 기념사에서 “내년부터 적용될 새로운 물가안정목표는 제도운영 경험과 물가여건의 구조적 변화를 감안해 대상지표와 목표 수준을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협의 대상인 재경부도 물가정책의 변화라는 큰 방향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중기 물가 목표만 낮추면 되지 굳이 CPI로 바꿀 필요가 있느냐며 기준지표 변경에는 부정적이다. 재경부의 한 당국자는 “CPI로 바꾸는 것에 대해 이의는 없지만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다”면서 “(기준지표를 바꾸지 않고) 물가 목표를 낮추는 쪽이 국민들에게 물가 안정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데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금리정책의 주도권을 한은에 완전히 넘겨줄 수 가능성이 있는데다 물가안정이라는 정책홍보 차원에서도 기준지표 변경이 달가울 리 없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도 이런 점을 감안한 듯 정례 브리핑에서 “물가안정 목표를 낮추는 방안을 한은과 협의 중”이라고 언급, 기준지표 변경보다 목표 하향 조정쪽에 무게를 싣고 있음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