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 기자의 밀리터리 레터] '북 무인기'-애꾸와 바보들의 무도회

고성능 고가격 무기체계 꼭 도입해야 하나

연평부대 부대원이 발칸포 사격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고성능 고가격 무기체계 꼭 도입해야 하나

[권홍우 기자의 밀리터리 레터]


오늘 편지의 주제도 역시 무인기입니다. 휴- ㅠㅠ. 정보의 홍수입니다. 국방부의 공식 표현대로 ‘북한제로 추정되는 무인기’ 사건 때문입니다. 정부가 정보를 관리하는 데 대한 반작용인지 무수히 많은 얘기들이 쏟아집니다. 국방부의 공식 발표는 늘 한 가지 방향입니다. ‘정확하게 판단될 때까지 단언할 수 없다.’ 초조해진 기자들은 더욱 더 취재에 매달립니다. 급기야 국방부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에서 ‘취재경쟁이 과열됐다’고 말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여기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표현이 떠오릅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이 한 말인데요. 뉴욕 증시의 주가가 치솟던 1996년 12월초, 너나 없이 무작정 주식 투자에 나서 주가가 치솟는 현상을 그리스펀은 비이성적 과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시장은 바로 반응했죠. 그린스펀은 딱 두 단어로 두 개의 효과를 얻었습니다. 이유 없이 오르던 주가를 제어함과 동시에 ‘경제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얻었죠.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그린스펀의 언어가 요즘처럼 뇌리를 때린 시절도 없습니다. 무인기 때문입니다. 파주와 백령도, 강원도 삼척에서 발견된 무인기는 사실 본격 군사용으로 간주하기에는 허접합니다. 동호인 수준입니다. 우리 군이 사용하는 그 어떤 무인기도 이들 세 가지 무인기의 성능을 한참 웃돕니다.

그런데도 난리입니다. 저도 한 몫 거든 것 같아 편하지 않습니다만 국익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무인기 사건으로 국내의 어떤 정치세력이 이득을 볼 것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뻔하죠. 그러나 관심 없습니다.

정작 우려하는 대목은 북한에 이로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은 그 누구보다도 무인기 사건의 혜택을 누렸습니다. 중앙일보가 아주 기획을 잘했더군요. 파주와 백령도에 떨어진 무인기를 국내에서 만든다면 얼마나 들까. 파주 무인기는 많아야 1,000만원, 백령도 무인기는 2,000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기사였습니다.

동호인 수준을 조금 벗어나는 무인기 3대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막대합니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기만하고 혼란을 유발한 데 이어 불필요한 지출을 강요하는데 성공하기 직전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무인기를 대응한다고 예산을 쓰면 쓸수록 웃는 자는 북한일지도 모릅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4일 정례브리핑에서 ‘무인기를 감시하려면 정찰 위성이 필요한데 지금 미국의 기술과 시스템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열린 전군지휘관회의에서 김관진 장관은 ‘북의 무인기가 앞으로 테러 등에 활용될 수 있다’며 대책 강구를 지시했습니다. 장병들의 고생길이 눈에 선합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말씀을 보탰습니다. “그동안 우리 군 당국이 관련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것은 방공망 및 지상정찰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요.


이쯤되면 관련자 처벌과 징계가 뒤따르는 게 수순입니다만,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돈 들이는 얘기만 떠돕니다. ‘저고도 레이더 도입과 격추 수단 모색’이 그 핵심입니다. 당장 전군에 사실상 비상이 걸렸습니다. 장병들이 아직도 녹지 않은 산과 개울, 계곡을 뒤지고 다녀야 할 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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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기를 포함해 어떤 비행체든 대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탐지와 대응인데요. 쉽게 말해 탐지는 레이더, 대응은 대공포 또는 미사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방부가 무인기 대응책으로 검토 중이라는 사업들은 하나같이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이스라엘제 아이언 돔, 독일제 맨티스 시스템을 비롯해 아직 미군의 본격적인 테스트도 끝나지 않은 레이저 무기를 개발하려면 적어도 수백억원대의 연구비가 필요합니다. 모두 탐지 및 대응이 일원화한 시스템입니다.

좋습니다. 효과만 확실하다면 돈을 들일 수도 있겠죠. 문제는 대응책 마련에 앞서 시민들의 안전을 생각하고 있느냐는 점입니다. 시계를 돌려보죠. 지난 1974년 12월 16일 초저녁, 서울 시내 방공포대에서 2,000여발을 사격한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국무회의가 피해 보상금을 서울시에서 지급하라고 결의했습니다만 이때까지 정확한 사망자 수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사건은 항로를 잘못 잡은 대한항공 여객기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피해는 컸습니다. 서울 동매문 상가를 지나던 버스에 타서 앉아있던 60대 노파가 버스 천장을 뚫고 들어온 대공포판의 파편에 맞아 사망했고요, 27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이었던 탓인지 당시 상황을 전해주는 신문기사는 여기서 끝입니다.

만약 군이 차기대공포를 개발·배치하려 해도 수도권 상공의 비행체로 공격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자칫 시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더욱이 돈도 많이 들어간다면, 그리고 대응 수단은 지금 수준으로도 가능하다면 굳이 탐지와 대응이 일원화한 비싼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찾기 어려워서 그렇지 무인기에 대한 대응 수단은 발칸포와 35미리 오리콘 대공포, 각종 미사일까지 적지 않습니다.

사실 천만원대 무인기에 최소한 수억원대 미사일을 발사한다는 것도 비효율의 극치입니다만 앞으로 군이 도입을 추진하는 시스템은 미사일 발사보다도 비효율적입니다. 적이 1억원을 들여 도발했다면 우리는 그 이하의 비용으로 방어하는 게 경제적입니다. 비대칭무기라는 점을 감안해도 수백, 수천배의 비용을 들인다면 우리 사회의 어딘가는 예산 부족의 타격을 받기 십상입니다. 먼저 군의 다른 사업이 영향받겠죠. 국회와 정부가 군의 무인기 관련 예산 증액은 따로 떼어내 국방예산안을 다루지는 않을 테니까요

한정된 예산 안에서 무인기를 대응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기구나 비행선, 아니면 국산 프로펠러 경공격기를 이용해 상시 초계가 가능한 시스템도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백령도에서 무인기의 궤적을 띠엄띠엄 이나마 잡은 것은 공중 경계 전력입니다. 육상의 값비싼 레이더들은 식별은 물론 탐지조차 못했습니다.

폼 안나고 돈 안들어도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대응 체계에 대한 논의는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군은 애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군의 발표에 일방적으로 기대는 기자들은 바보에 해당할 지도 모릅니다. 끌면 끌수록 북한에 이로울 뿐인 무인기 사건의 연장은 탐욕에 눈이 먼 어리석은 자들이 기획한 ‘애꾸와 바보들의 무도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린스펀은 요즘 후회하고 있다고 합니다. 비이성적 과열을 막지 못했다는 거죠. 국제금융가의 거품이 한창이던 1996년 10월 뉴욕 브루클린음악당에 월가의 그늘을 담은 뮤지컬의 막이 올랐는데요. 제목이 ‘약탈자들의 무도회(The Predators‘ Ball)’였습니다. ‘정크본드 시장의 황제’로 군림하다 내부자거래와 사기 혐의가 드러나 옥살이를 했던 밀켄의 길지 않지만 굴곡진 생애를 담은 소설 ‘약탈자들의 무도회’를 뮤지컬로 옮긴 것입니다.

미국 형법 역사상 개인 벌금형 중 최고액인 6억 달러를 낸 인물인 밀켄이 잘 나갈 때 주요인사와 투자자들을 초청해 개최한 연찬회의 이름이 바로 ‘약탈자들의 무도회’였습니다. 기막힌 작명센스를 과시했던 밀켄은 옥살이를 마친 요즘도 월가를 기웃거리고 있습니다만 그의 탐욕보다 무서운 것은 청년들의 맹목적 추종과 비이성입니다. 밀켄의 모교인 하바드대 경영대학원생들은 초가을마다 정장 파티를 여는데 그 이름이 바로 ‘약탈자들의 무도회’입니다.

우리나라가 사들일 무기는 어쩌면 ‘약탈자들의 무도회’를 통해 배출되거나 한 두번 쯤은 관련이 있는 인물을 통해 들어올지도 모릅니다. ‘애꾸와 바보’들의 비이성적 과열이 그들을 대항해낼 수 있을까요. 국민들의 피 같은 돈이 허투루 쓰이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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