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정수 28일부터 '기억의 저편' 개인전
봄날이면 어김없이 집 근처 산등성이를 뒤덮는 진달래. 사랑, 이별, 여인의 한(恨) 등 한국적인 의미와 상징을 때문일까 진달래는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꽃 중에 하나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 김정수가 28일부터 인사아트센터에서 진달래 그림을 선보이는 개인전 ‘기억의 저편’을 연다. 홍대 미대를 졸업하고 83년 도불(渡佛), 전업작가로 활동하며 1년 7개월 만에 첫 전시를 열 정도로 현지에서 인정 받았지만, 20여년 동안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었다.
95년 우연하게 한국을 들른 그의 눈 앞에는 흐드러지게 핀 연분홍빛 진달래가 펼쳐졌다. 보길도에서 설악산까지 진달래 길을 따라 간 여행은 그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고, 이후 그는 진달래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됐다. 여행길에서 만난 진달래는 돌과 삼베 캠버스를 분홍빛으로 수놓았다.
그의 그림은 여백의 미를 한껏 살렸다. 빈 캔버스 바닥에 깔리듯 꽃잎을 섬세하게 그리는가 하면, 대바구니에 꽃잎을 담아 놓거나 진달래 꽃을 공중에 흩뿌린다. 그림 앞에 서면 낭만적이면서도 향수에 젖게 한다. 기억과 현실을 함께 표현해 초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의 기억을 더듬어 흐릿하게 그린 기와집 위에 공중을 떠다니듯 그린 진달래는 한낮 부질없는 인생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미술평론가 박영태 씨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 화면은 하늘이자 땅이고 물이며 시간과 공간을 포괄한다”며 “거기 어느 곳에 그려진 극사실적인 진달래는 허공에서 속절없이 흐느끼듯 봄꽃들의 허망한 장면을 아련하게 떠올린다”고 말했다. 김정수 작가는 “진달래 한잎 한잎을 따서 쌓고 흩뿌리는 과정이 바로 기억과 현실을 겹쳐놓는 과정”이라며 “진달래는 나에게 한국 현대사의 한 부분을 반추할 수 있고 우리나라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전시에는 최근작 30여점이 선보인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대부분 60호 미만의 소품들로, 돌에 그린 진달래와 삼베 캔버스에 수 놓은 듯 그린 진달래 그림 등이 다양하게 선보인다. 전시는 4월 3일까지. (02)737-8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