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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박근혜 대통령은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라며 "규제철폐에 대해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원수'라는 격한 표현을 쓰면서까지 규제철폐를 외쳤듯이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 드리운 규제의 안개는 짙다. 특히 규제의 대못이 성장 자체를 가로막는 대표적인 곳이 보험산업이다. 부당·과당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과잉규제로 이어져 산업 자체를 옭아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깝게는 보험사 민원감축 논란을 들 수 있다. 법적 근거조차 희박했던 대책은 시장질서를 있는 대로 교란시켰다. 수십년째 계속돼온 두 부처(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간 이중규제 논란은 성장의 맥을 끊어놓았다.
전문가들은 부처 간에 상충 되거나 법적 근거가 부족한 규제들을 개선하지 않는 한 보험산업의 질적 발전은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정세창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보험산업은 양적 성장이 단기간에 이뤄지면서 관련규제를 정비하는 시간이 부족했다"며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있고 다수의 규제당국이 있는 여건에서는 규제가 명확하게 명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놓고 가격 통제하는 자동차보험=보험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강도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자동차보험이다. 은행이나 카드 산업에서 적정가격을 유도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이 제시되는 경우는 있지만 가격조정 권한을 정부가 가진 분야는 자동차보험 시장이 유일하다.
자동차보험이 관치의 산물로 전락한 것은 겉과 속이 다른 기이한 속성 탓이다. 자동차보험 시장의 요율 자유화는 1994년 시작돼 2001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개방됐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정부는 자동차보험료가 소비자물가지수(CPI)에 포함돼 있다는 점을 들어 보험료를 통제한다. 자동차보험의 구조적 모순도 자동차보험 시장을 왜곡하는 원인이다.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과 임의보험으로 나뉜다. 자동차를 가진 국민이라면 누구나 빠짐없이 자동차보험에 가입해야 하며 다만 가입자의 처지에 맞게 보험 세부사항을 임의로 선택(특약)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당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사회적 여론은 자동차보험을 일종의 사회보장제도처럼 인식하고 보험사가 손해율 악화를 근거로 가격을 올리려 하면 강하게 저항한다. 보험연구원의 기승도 박사는 "자동차보험 자유화의 취지와 자동차보험에 대한 소비자들의 시각을 반영해 자동차보험 시장의 경쟁구조를 재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관료의 보신주의와 과도한 건전성 규제=보험사의 건전성 규제는 관료들의 보신주의가 빚어낸 또 다른 과잉규제다. 산업 성장을 고민하기보다 위기발생시 뒤따를 책임을 피하기 위해 손쉬운 대안인 규제의 벽부터 쌓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보험사 재무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RBC)비율에 대한 신뢰 수준을 종전 95%에서 99%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이 말은 기존에 '보험사가 20년에 한번 파산한다(신뢰수준 95%)'고 가정했다면 앞으로는 '100년에 한번 파산한다(신뢰수준 99%)'는 가정 아래 RBC비율을 산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보험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RBC비율 규제가 강화되면 11개 생보사와 6개 손보사의 RBC비율이 당국의 권고치인 150%에 미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사들은 금융당국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을 외면한 과잉규제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RBC비율을 맞추려면 자본을 확충하거나 영업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이 규제를 강화한 후 보험업계가 추가로 들인 자본금 규모는 약 3조5,000억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험사들이 단계별 규제강화 때마다 자본을 확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 한 중소형 보험사 관계자는 "온라인자동차보험사는 한꺼번에 보험금을 대량 지급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극히 낮지만 생명보험사와 동일한 RBC비율 규제를 받는데 그만큼 금융당국의 규제강화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라고 전했다.
◇공정위ㆍ금융위 양립에 따른 이중규제=보험산업 위에 군림하는 두 시어머니의 존재도 산업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초 보험사와 정비ㆍ렌트 업체 간 해묵은 논쟁인 자동차 정비수가와 렌트비를 둘러싸고 대립했다. 공정위는 손보사들이 정비업체에 부당한 계약을 강요했다며 18개 불공정약관 조항에 대해 시정조치를 내렸다. 그러자 일주일 후 금융위는 돈벌이를 위해 정비 업체와 렌트 업체가 비용을 과다 산정했다며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을 개정하겠다고 맞섰다. 두 공룡 간 싸움으로 보험사는 그야말로 샌드위치 신세다. 공정위의 담합이라는 칼날과 금융위의 행정지도 사이에서 꼼짝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중규제의 덫을 예단한 금융위와 공정위는 2007년 관할권 중복 및 금융사 규제의 피해를 막기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지만 공정위의 보험사 담합 과징금 청구는 계속되고 있다. 관련법들이 모호한 탓이다. 보험업법은 경쟁제한 행위와 관련해 공정거래법과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고 공정거래법 역시 보험산업의 특수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이승준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산업의 특수성(공동 통계자료 집적, 거대 리스크 공동인수 등)을 감안할 때 일정 부분의 공동행위는 공정거래법 적용 제외 대상으로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