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神算)」, 「안개 덮인 태산」, 「화씨벽(和氏璧·평범한 돌로 보이지만 큰 비취가 감춰진 보석)」으로 불리는 이창호이지만 세계대회 3연패는 달성해본 적이 없다. 91·92년 동양증권배를 2연패한 게 최고기록이다. 왜 그렇게 어려울까. 국제대회는 국내대회처럼 도전기 방식이 아니라 그 전 우승자라 할지라도 본선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즉 각국의 최정상급 기사들이 출전하는 「죽음의 정글」에서 5연승을 3년 연속 달성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힘들다.「국제대회 3연패」는 다른 기사 역시 이뤄본 적이 없다. 일본의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9단이 88·89년 후지쓰배를 연달아 우승한 적이 있을뿐이다. 그나마 후지쓰배에 한·중 기사들이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전이라 이창호의 2연패에 비해서는 의미가 떨어진다. 또 다케미야가 89~92년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를 4연패했지만 이 대회는 본격 기전이 아니고 속기전이다.
이창호의 4강전 상대는 일본의 야마다 기미오(山田規三生)7단. 유시훈7단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신예강자다. 16강전에서 유창혁9단을 꺾어 대파란을 일으켰다. 97년에는 유시훈에게서 왕좌 타이틀 빼앗아가고, 신인왕전 우승을 차지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기풍은 실리에 밝고, 타개에 능하다. 8강전에서 김승준6단과 맞붙었을 때도 상대의 포위망 속에서 역습을 성공시켜 승리를 낚았다. 그러나 야마다는 이창호의 적수가 아니라는 게 바둑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또다른 준결승은 일본에서 활약중인 조선진9단과 히코사카 나오토(彦坂直人)9단의 대결이다. 히코사카는 힘이 좋은 전투형의 바둑. 일본의 랭킹4위 기전인 10단전을 최근까지 보유한 강타자다.
그러나 아무래도 조치훈9단을 이기고 일본 3대 타이틀의 하나인 본인방을 차지한 조선진이 우세할 것으로 보인다. 바둑평론가 노승일씨는 『정상급 기사들의 실력은 종이 한장 차이다. 따라서 요즘 조선진이 상승세를 타면서 자신감 넘치는 바둑을 구사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지난번 삼성화재배 8강전이 전형적인 사례. 상대인 중국 왕레이(王磊)9단은 대마의 사활을 내팽개치고 실리를 챙겼다. 예전같으면 그냥 참고 말았을텐데 조선진은 그 즉시 공격에 돌입, 70여수만에 대마를 전멸시키고 불계승을 낚았다. 무미건조했던 조선진의 기풍으로서는 획기적인 변화이다.
결국 결승전은 이창호와 조선진의 대결로 압축될 가능성이 높다. 역시 대부분의 바둑계 인사는 이창호의 승리를 점친다. 한마디로 『그동안의 성적이 증명하지 않느냐』는 것. 그러나 조선진은 지난7월 본인방 타이틀을 획득한 뒤 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창호를 세계 최강이라 인정할 수 없다』며 강한 라이벌 의식을 드러낸 적이 있다. 이래저래 바둑팬들에겐 기다려지는 한판의 대국이다.
최형욱기자CHOIHU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