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자연을 닮은 미니멀리즘

하종현 가나아트갤러리서 회고전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하종현 전 서울시립미술관장의 화업(畵業) 50년을 정리하는 회고전이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지난 주말 막을 올렸다. 1960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던 그의 초기작품은 프랑스의 앵포르멜(비정형 추상주의) 화풍의 영향을 받아들였지만, 이내 실증을 느낀 그는 실험에 들어간다. 캔버스를 조직적으로 절단해 직조기법으로 색상을 배합하는 기하학적인 배열 등 2차원의 캔버스에 공간의 개념을 도입하기도 하고, 스프링과 철조망을 캔버스에 붙이면서 작품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젊은 시절 화려한 색상으로 다양한 시도를 했던 그는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무채색의 미니멀리즘으로 독창성을 굳히기 시작한다. 그 절정이 바로 1970년대부터 선보인 '접합' 연작. 들판이 펼쳐진 듯한 은은한 풀빛이나, 짙푸른 하늘이 떠오르는 쪽빛 등 단색 물감을 성긴 마대 뒷면에서 밀어올려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기법은 서양 회화양식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배압법(背壓法)이라고 불리는 그의 아이디어는 한국의 전통 한옥 공법에서 나왔다. 나무를 엮어 격자판을 만들고 잘게 썬 짚을 진흙에 섞어 버무린 다음 공처럼 뭉쳐 뒷면에서 밀어넣던 한옥 벽채 제작공법을 캔버스에 그대로 옮긴 것이다. 뒤에서 밀린 물감을 긁고, 훑어내고 밀어내면서 영혼의 메시지를 담는다. 그를 미니멀리즘의 대가에 올려놓은 '접합'은 마치 일필휘지하듯 써내려간 글자 같기도 하고, 한겨울 몰아치는 북풍이 지나간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젊을 때는 화려한 이미지를 채우는 데 관심이 많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있는 것을 지우는 과정이 더 좋다"며 "뒤에서 밀려 나온 물감이 마대 캔버스와 만들어내는 비정형적인 이미지는 자연과 가장 닮아있다"고 말했다.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그의 작품 변화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에는 1960년대 한국 최대의 전위 미술단체였던 A.G. 구성원으로 활동했던 당시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50여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3월 23일까지. (02)7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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