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절반의 실패로 끝난 언론 실험

“청와대가 엉뚱한 사람을 데려다가 바보로 만들었다.” 요즘 송경희 전 청와대 대변인과 관련해 청와대 기자실에서 나오는 말이다. 송 전 대변인의 발탁은 참여정부가 언론과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시도했던 하나의 실험이었지만 결국 두어달만에 경질되면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는 당초 세워졌던 플랜의 오류, 홍보 시스템의 문제, 개인의 자질 문제가 얽히면서 참여정부 출범 72일만에 나온 첫 실패작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권 인수위 시절 청와대 첫 대변인이 누가 될 것인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시 선대위 시절부터 노 대통령을 훌륭하게 대변해 왔던 이낙연 민주당 의원이 청와대 대변인직을 고사했다. 그후 나온 얘기는 노 대통령이 `여성이면서 정치를 하지 않았고, 방송을 아는 사람`을 인선 기준으로 잡았다는 것이다. 한때 김현미 현 국내언론담당 비서관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결론은 전혀 엉뚱하게 `송경희`란 낯선 얼굴이었다. 당시 송경희란 인물의 발굴을 놓고 말들이 많았지만 나중에 노 당선자 인사특보였던 신계륜 민주당 의원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신 의원은 다각도로 추천을 받은 뒤 이를 학계 인사 등 5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붙여 1등을 차지한 송 전 대변인을 선택했다고 한다. `몰라요 대변인` 불명예 그러나 송경희 대변인 체제는 2월 10일 첫 내정 기자회견 자리에서부터 삐걱거렸다. “대변인이란 자리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말로 전달하는 자리”라고 규정한 송 전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답해 구설수에 올랐다. 그 때부터 그에 대해 “불안하다”는 말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보름쯤 뒤인 25일 노 대통령의 취임 첫날에도 송 전 대변인은 노 대통령과 세르게이 미로노프 러시아 상원의장과의 면담을 브리핑하면서 민감한 문제인 북한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한 러시아의 가스 지원을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가 “정말 노 대통령이 그렇게 말을 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쩔쩔맸다. 외교 및 군사분야, 특히 북한 문제를 잘 몰랐던 그에 대한 `불안감`은 참여정부 출범 첫 날부터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송 전 대변인은 이후 크고 작은 문제에서 작은 실수들을 만들어 냈고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브리핑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작은 문제 하나에도 “정말 그랬냐”라고 캐물었다. 이렇게 기자들의 공세가 계속되자 그는 “잘 모르겠다”는 말만 연발하다가 급기야 `몰라요 대변인`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때 청와대측은 송 전 대변인을 보완하기 위해 행정관 1명을 급파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정적인 실수는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개시한 3월 20일 브리핑이었다. “이라크전 개전에 따라 군의 대북 정보감시 태세인 워치콘(Watch Condition)을 한단계 올렸다”는 잘못된 발표를 한 것이다. 북한 핵문제로 한반도에 쏠린 눈이 있었기 때문에 잘못된 브리핑은 외신을 통해 전 세계로 급박하게 타전됐고, 급기야 북한까지 나서 남북대화 중단을 선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군사적 지식이 없는 대변인의 약점이 또 한번 드러난 것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에서는 대변인 교체 문제가 심각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송 전 대변인을 교체하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의 한 고위인사는 “노 대통령은 자신이 인사를 잘못해 놓고도 그것을 금방 바꾸려 하지 않는다”며 “금방 바꿔 버리면 그 사람의 경력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되는 것을 걱정해서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대변인 교체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고, 이는 지난 7일 대변인 교체로 결론이 났다. 특히 중요한 첫 외교 일정인 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대변인 문제를 그냥 안고 갈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솔직히 청와대 내에서는 송 전 대변인 개인에 대해 나쁜 평은 없다. 오히려 이미 한달 전에 교체 통보를 받고도 충실히 자신의 역할을 다해 왔던 점에 대해 호의적인 평까지 나온다. 개인 성품으로 보더라도 성실하게 사심 없이 일 처리를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자리`였다. `정치` 근처에도 와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국정 운영의 핵인 청와대의 `입`을 맡긴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복잡하고 민감한 외교 및 안보, 북한 등 국내외 정책 문제에 대한 브리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자들과의 관계도 문제였다. 송 전 대변인은 같은 문제를 다시 확인하는 기자들, 조사와 토씨 하나하나까지 캐묻는 기자들을 쉽사리 이해하지 못했다. 기자들 역시 기사 가치에 대한 `감`이 없는 `초짜`대변인을 좋게 대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혼선의 연속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시스템이었다. 신설된 홍보수석 밑에 있는 1급 대변인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더욱이 종종 실수를 하는 그였기에 송 전 대변인은 “영이 안 선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게다가 그는 청와대 내 11개 비서관 직책 중에서 다른 비서관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나의 비서관일 뿐이었다. 그를 도와야 하는 보도지원비서관실은 대변인과 동등한 위치였고, 행보를 같이 해야 하는 국정홍보비서관실은 종종 `청와대 브리핑`에서 대변인과 혼선을 빚었다. 그의 상관인 이해성 홍보수석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 방송기자 출신으로서 경험이 많았던 그였기에 대변인을 도와야 했지만 이 수석은 그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았다. 기자들 사이에서 “송 대변인만 총알받이로 전쟁터(기자 브리핑)에 내보내고 이 수석은 뒤에 숨어 있다”는 비판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청와대 내에서도 소위 `청와대 사람`들과 아무런 연을 맺지 못한 송 전 대변인을 도와주려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송 전 대변인이 제대로 적응을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한마디로 선택의 잘못이었다. 청와대가 `여자`대변인을 고집했을 때, 기자들 사이에서는 대변인이 기자들과 술을 마시며 `접대`를 하는 대 언론 관행을 깨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정치와 연이 없는 사람을 고른 것도 정치판의 `나쁜` 관행과 거리가 있는 사람을 고르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언론 개혁을 한다는 청와대의 순진하고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라는 지적이 그때 나왔다. 송 대변인의 뒤를 이은 사람은 `노 대통령의 생각을 읽는다`는 윤태영 대변인이다. 따지고 보면 대변인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생각을 가장 잘 알 뿐만 아니라 정치적 능력 역시 뛰어난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청와대의 실험은 해프닝으로 끝났고, 측근 대변인으로 돌아온 것이다. 청와대는 지금 송 전 대변인을 위해 그의 `역량`에 맞는 자리를 찾고 있다. 그것이 어쩌면 청와대 자신의 실수에 마지막 변명이 될 것이다. <고주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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