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7월 12일] 신뢰 잃는 외환정책

1992년 영국 정부와 헤지펀드인 퀀텀펀드의 조지 소로스가 한판 붙었다. ‘영국 경제현실에 비해 파운드화가 고평가 됐다’고 판단한 조지 소로스는 파운드 매도에 나섰다. 다른 투기세력들도 조지 소로스의 결정이 옳다고 생각하고 매도 행렬에 동참했다. 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영국 경제는 튼튼하며 투기세력의 무분별한 파운드 매도는 결국 펀드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며 큰소리를 쳐댔다. 결과는 영국 경제현실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본 조지 소로스를 필두로 한 투자자 집단의 승리였다. 파운드화는 연일 속락했고 조지 소로스는 파운드화 매도로 10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이를 영국 정부가 경제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잘못된 정책을 고집하다 해외 투기세력에 뭇매를 맞은 ‘파운드화의 굴욕’으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외환시장에의 직접 개입을 선언하고 나섰다. 환율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2,0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도 풀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올 초까지만 해도 수출증가를 통한 경제성장의 기치를 내걸고 고환율 정책을 부르짖었던 정부가 기존 정책을 헌신짝 팽개치듯 버리고 저환율 기조로 돌아선 것이다. 정부의 외환정책은 글로벌 금융시장과 우리 경제의 상황이 바뀜에 따라 그 궤도가 수정될 수 있다. 문제는 정책 변경이 일관성 없이 단기간에 이뤄지고 있고 스타일도 세련되지 못하다는 점이다. 외환 정책의 잦은 변경은 해외 투자가들의 신뢰를 잃게 만든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한국 정부가 원화가치 하락을 오랫동안 연기하길 원한다면 시장 펀더멘털을 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국제유가 급등, 경상수지 적자 등 국내외 경제변수가 원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하지 않고 충격요법을 가할 경우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다. 우리 정부가 ‘저환율 정책’ 카드를 내보임에 따라 해외 투기세력들이 이를 역이용해 외환투자에 나설 가능성도 높아졌다. 우리 정부는 파운드화의 굴욕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정부의 인위적인 저환율 정책이 또 하나의 ‘굴욕’이 되지 않도록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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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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