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韓·中·日 바둑 영웅전] 고육지책

제8보(79∼83)



고육지책이라는 것이 있다. 내 팔뚝을 하나 떼어주면서 상대방의 목을 노리는 고급 전법이다. 당장은 자기가 큰 고통을 느끼지만 장래의 희망을 위하여 그것을 참고 팔뚝을 떼어주는 것이다. 삼국지의 적벽대전 직전에 오나라의 충신 황개 장군이 젊은 사령관 주유에게 대들다가 뼈가 부서지는 혹독한 매를 맞고 분을 참지 못하여 적군인 조조에게 투항하는 얘기가 나온다. 고육지책의 한 전형으로 통한다. 병법에 능통한 조조지만 황개가 워낙 처참한 매를 맞았다는 사실을 세작의 보고를 통해 확인하고는 하늘이 돕는다고 기뻐하면서 황개의 투항을 용납한다. 그 결과 적벽대전은 조조의 참패로 끝난다. 우선 오늘의 수순을 눈으로 따라가 보자. 흑79는 필연이다. 흑이 80의 자리에 두어 2점을 살리면 수상전에서 흑이 지게 되므로 실전보의 흑79는 절대수순이다. 백도 80으로 따내지 않을 수 없다. 이때 이세돌은 우하귀의 흑 5점이 잡힌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짐짓 그곳을 외면하고 실전보의 흑81로 두었다. 아마추어 유단자 수준의 애기가라면 누구든지 의아심을 가질 것이다. 우하귀의 흑 5점은 선수로 살 수 있는 입장인데 왜 이세돌은 짐짓 그 돌들을 희생시킨 것일까. 그의 머릿속에 고육지책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참고도1의 흑1 이하 백4는 검토실의 모든 프로기사들이 예측했던 수순이었다. 그러나 이세돌은 이 길로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참고도1의 진행 이후에 흑이 둘 곳이라고는 참고도2의 흑1뿐인데 그것이면 백은 군말없이 백2로 받아줄 것이 뻔하다. 그 코스는 백에게 전혀 희망이 없다. 이세돌은 일부러 실전보의 백82를 허용하고 흑83을 얻어낸 것이었다. 불확실하지만 뭔가 희망의 여지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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