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0월8일] 시카고 대화재


시카고 뒷골목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났다. 화재발생 일시 1871년 10월8일 밤9시. 강풍을 탄 불길은 총연장 190㎞에 이르는 시내 소나무 보도(步道)를 타고 순식간에 도시 전역으로 번졌다. 이튿날 밤까지 계속된 화재는 신흥도시 시카고의 풍요를 태워버렸다. 건물 1만7,500동과 가옥 7만여채가 불탄 가운데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은 시내 중심가. 여의도 3분의1만한 면적에 들어서 있던 건물들이 석조 기둥 몇 개만 남기고 홀랑 잿더미로 변했다. 시민 300여명이 불에 타 죽고 9만여명이 집을 잃었다. 재산피해 약 2억2,200만달러(요즘 가치 249억달러). 화재 당시 시카고는 번영의 상징이었다. 1831년까지 시카고의 인구는 불과 350여명. 인디언 소탕을 위해 설치된 병영마을에서 서부개발 붐을 타고 인구 30만의 대도시로 성장한 시카고는 화재로 40년간의 성장과실을 날렸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미국 내 다른 대도시 네 곳에서도 불이 나 모두 1,500여명이 사망하는 통에 종말론이 고개를 들었다. 검게 탄 시카고는 절망에 빠지지 않고 첨단기술을 총동원, 현대를 건설해냈다. 1개월 만에 주택 5,000채가 건설되고 목조ㆍ석조 건물 대신 10~15층짜리 철골 골조 빌딩이 속속 들어섰다. 시카고는 건설경기 덕분에 미국을 휩쓴 1873년 공황도 비켜갈 수 있었다. 화재 10년 후 도심은 고층 빌딩 숲으로 바뀌었다. 인류는 이로써 마천루(摩天樓ㆍskyscraper)시대에 접어들었다. 세계의 대도시가 시카고를 뒤따랐다. 맨해튼의 초고층 건물군도 시카고와 벌인 마천루 경쟁의 산물이다. 오늘날까지 시카고는 도시설계를 공부하는 건축학도의 연구 대상으로 손꼽힌다. 대형 화재에도 절망하지 않는 불굴의 용기에서 현대 도시의 원형이 싹튼 셈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