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100년 맞은 연준 어디로] <하>연준의 선택,중앙은행들의 딜레마

막 내린 세계 공조… 환율경쟁 촉발 우려<br>글로벌 경기부양 위한 돈풀기… 나라마다 회복 수준 차이보여<br>새 금융여건 적응해법이 관건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치밀한 계획과 섬세한 실행으로 통화정책이라는 거대한 항공모함의 키를 일단 무리 없이 돌렸다. 그러나 앞으로 수년간 이어질 통화긴축의 과정 앞에서 연준의 고민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와 자산시장에 낀 거품, 넘쳐나는 유동성에 익숙해진 경제 등 그로 인한 부작용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연준의 출구전략이 자칫 디플레이션 압력을 고조시킬 경우 연준의 돈살포 덕에 살아나고 있는 미국과 글로벌 경제가 또다시 위기에 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또 연준의 출구전략은 미국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이후 전세계 중앙은행들은 글로벌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공조 명분하에 동시에 돈풀기에 나섰지만 이제 각국의 경기회복 수준이 차이를 드러내면서 저마다 다른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앙은행들이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어 글로벌 금융시장은 중앙은행발 혼란에 빠져들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특히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 강화, 달러화 강세 등이 예상되는 가운데 자국의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환율전쟁이 촉발될 우려도 크다.

일단 일본은행은 내년 중 추가 완화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한발 앞선 미국의 출구전략이 시장에 예상 밖의 부작용을 몰고 올 경우 훗날의 부담을 키울 수 있는 완화정책을 확대하는 데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또 일본은행이 올 들어 20%의 엔화 약세를 유도하며 공격적인 완화정책을 편 것은 미국의 용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인데 연준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이후 엔화의 나 홀로 약세와 달러 강세가 이어진다면 거센 역풍을 맞게 될 수도 있다. 또 손쉬운 금융완화 정책 지속이 실물경제의 회복을 동반하지 않는 엔저와 물가상승만을 부추기며 일본 경제의 체질을 더욱 약화시킬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미 연준과 일본은행 양쪽의 공격적인 돈풀기로 유로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딜레마에 봉착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기가 막 장기침체에서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기준금리를 0.25%까지 끌어내리며 부양에 나섰는데도 3·4분기 경제성장률이 0.1%에 그칠 정도로 성장세는 미약하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로 대표되는 회원국들 간 경제여건이 너무 다른데다 11월 물가상승률이 0.9%에 그치는 상황에서 무작정 추가 부양책을 쓰기도, 치솟는 통화가치와 성장둔화를 감수하고 긴축을 하기도 마땅찮다.

5월 이후 연준 출구전략의 파괴력을 한 차례 맛본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긴장감이 남다르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에서 풀려난 돈을 끌어모으며 호황을 누려온 신흥국들은 연준의 출구전략 조짐이 초래한 통화가치 급락으로 물가는 치솟고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로 경기가 악화됐다.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경기를 생각하면 경기부양적 통화정책을 펼쳐야 마땅하지만 이는 자칫 통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물가상승률이 11%를 돌파한 인도의 중앙은행(RBI)이 18일 금리를 '깜짝' 동결한 것은 고물가와 저성장, 미국 출구전략이라는 변수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 RBI의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준다. ING의 팀 콘돈 아시아태평양 리서치담당은 "아시아의 정책당국자들은 미국의 경기회복에 따른 수출확대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실제 수출 증가세가 미약할 경우 한국과 태국 등 일부 중앙은행들은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로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의 출구전략이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새로운 금융여건에 적응하기 위해 어떤 해법을 도출해낼지에 따라 내년 글로벌 금융시장은 전대미문의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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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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