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SK그룹에 편입된 SK하이닉스는 올해 1ㆍ4분기에 매출 2조7,810억원, 영업이익 3,170억원의 실적을 기록하며 세계 2위 메모리반도체 업체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여기에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조2,000억원에 이어 올해 3조8,000억원 등 2년간 무려 8조원가량의 자금을 시설투자에 사용할 예정이다. 옛 하이닉스가 국내자본을 만났기에 가능했던 성공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반면 2003년 론스타에 인수된 외환은행은 국내자본을 만나지 못해 비극적인 고통을 겪어야 했다. 2010년 하나은행이 외환은행을 매입했지만 론스타의 '먹튀' 논란 등 수많은 잡음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외국자본의 국내 기간산업 인수는 대체로 잡음을 남겼다. '국내 기업 헐값 인수→구조조정(투자 등 비용절감)→실적호전→고가 배당이익 수령 및 상장폐지→고가 매각'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국부 유출 논란을 빚었던 것이 하나의 공식처럼 굳어졌다.
따라서 국내 기간산업은 가능하면 우리 기업이 인수할 수 있도록 인수합병(M&A) 환경을 조성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국내 기간산업이 성장하고 커가기 위해서는 국내자본이 인수하는 것이 옳다"며 "이를 위해서는 국내 사모펀드 시장 육성은 물론 대기업의 M&A를 특혜로만 보는 시각이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자본 인수해야 회생 여력 커져=SK하이닉스뿐 아니라 기간산업이 국내자본에 인수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보고 있는 사례는 적지 않다. 한국철도차량 인수를 통해 탄생한 현대로템은 최근 1조원가량의 인도 전동차 사업을 수주하는 등 세계적인 전동차 업체로 부상했다.
한보철강도 국내자본 인수로 국내 기간산업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2004년 현대제철은 한보철강을 인수한 뒤 투자 등을 통해 현대제철의 규모를 키워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자동차용 소재 개발 부문에도 진출했다.
대우인터내셔널도 좋은 사례다. 포스코는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했고 현재 포스코와 같이 해외사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동부그룹이 인수한 동부대우전자(옛 대우일렉)도 비슷한 케이스다. 한때 인도 등 외국계 기업이 인수를 시도했다가 기술 유출 논란 등을 불러일으켰지만 동부그룹으로 편입되면서 비로소 전자업체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두산그룹에 편입된 한국중공업과 대우종합기계도 외국자본에 넘어갈 뻔한 위기를 벗어났다. 현재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등으로 사명을 바꾼 이들 기업은 발전 플랜트 및 굴삭기 시장 등에서 세계적 업체로 성장했다. 이외에도 현대자동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등이 국내자본에 의해 인수된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외국자본 '먹튀'도 가지가지=만도는 외국자본에 인수되면서 피해를 본 사례다. 만도는 한때 현대모비스와 매출액 등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때 미국 JP모건에 매각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뒤 2008년 한라그룹이 되찾아왔지만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배당이익을 빼나가는 데만 신경 쓴 것이다. 비슷한 위치였던 현대모비스는 훌쩍 커버린 상태다.
현재는 현대중공업 소속 계열사지만 1990년대 말 외국자본에 팔렸던 현대오일뱅크도 아픈 기억이 있다. 현대가의 일원으로 편입되기 전인 11년 동안 외국자본은 투자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심지어 복사기도 직원들로부터 돈을 받고 사용하게 할 정도로 돈을 빼내는 데 혈안이 됐고 현대오일뱅크는 현대가 인수한 후 비로소 제대로 된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외국계 자본 인수로 어려움을 겪는 사례는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쌍용자동차도 한때 상하이차에 인수되면서 연구개발은 물론 제대로 된 시설투자도 하지 못했다. 상하이차의 먹튀 논란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국내 기간 중견산업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의 아사히글라스는 전기초자를 공개매수한 뒤 상장폐지를 밟았다. 이베이도 옥션을 인수하면서 상장폐지를 단행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상장폐지는 외국자본들이 기술 유출 등의 비난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인수=특혜' 편견 사라져야=국내 자본의 기간산업 M&A가 활발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우선 '대기업 인수=특혜'로 보는 시각이 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대기업이 인수할 때마다 특혜라는 이야기는 빠짐없이 나온다"며 "결국 이는 국내 기업의 기간산업 인수를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국내자본 위주로 된 사모투자펀드 시장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 기간산업의 해외유출을 막기 위해 대기업 M&A 시장 진출을 촉진하려 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전무는 "대기업 등 국내자본의 M&A 시장 참여를 위한 여러 방안이 나올 필요가 있다"며 "국내 기술 및 자본 유출은 심각한 후유증을 불러오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