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내가 창조했다는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마더'는 그런 느낌이 많아서 좋았어요." 갈대가 우거진 들판에서 추는 광기의 춤, 그리고 시끄러운 버스 안에서 추는 망각의 춤. 영화 '마더'는 이렇듯 김혜자에서 시작해 김혜자로 끝난다. '국민 어머니'라는 틀에서 벗어나 영화 속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던 김혜자(68)를 25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곱게 화장을 하고 나타난 그는 영화 속 '편집증적인 엄마'가 아니었다. 그는 "영화 속 엄마의 캐릭터가 타인과의 소통 없이 허공을 보고 혼자 말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무척 외로웠다"며 "아들만 바라보고 사는 영화 속 엄마는 '짐승 같은 모습'이지만 짐승 같은 엄마의 심리상태를 비롯한 영화 장면은 창조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김혜자는 영화 촬영 과정에서 실제로 감정이 이입돼 아들 역을 맡은 원빈만 보면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그는 "도준이(원빈의 영화 속 이름)가 모자를 눌러쓰고 다녀서 머리가 바보같이 눌렸는데 그걸 보면 왜 그리 가슴이 아프던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혜자는 봉 감독이 자신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촬영 과정에서 주문도 많았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가슴을 찌르는 듯한 느낌으로 연기를 해달라'는 식으로 말해요. 무슨 말인지는 못 알아듣겠는데 어찌나 쉽게 말하는지….(웃음) 그래서 따라할 테니 먼저 해보라고 했죠." 하지만 그는 봉 감독의 주문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내면에 죽어있던 세포가 깬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오프닝과 엔딩의 춤 장면을 비롯한 영화 곳곳의 명연기가 탄생한 것이다. 김혜자는 '엄마가 뿔났다'와 '마더' 중에 어느 쪽에 가깝냐는 질문에 '마더'의 엄마와 가깝다고 말했다. " '엄마가 뿔났다'는 선구자적인 캐릭터고 우리나라 정서에 아직 이르다"며 "난 주위를 시끄럽게 하는 건 싫어하는 성격이라 혼자 화장실에 틀어박혀 우는 게 낫다"며 웃었다. 그는 실제로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는 엄마는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로서 충실하지 않으니 연기하는 것 만큼은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했던 많은 '엄마' 역할의 연기는 자식에게 떳떳하고자 하는 '고매한 여인'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