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특허심판 품질 높이는 원년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맛 집으로 소문난 한 음식점에 다녀온 적이 있다. 소문난 집이라 그런지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하지만 음식이 너무 늦게 나오는 통에 점심시간 직후 예정된 회의 걱정에 중간중간 시간을 확인해야 하는 불편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름대로는 미식가를 자처하는 필자이지만 그 집에 또 갈 일이 생긴다면 조금은 주저할 것 같다. 아무리 산해진미를 차려준다 해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은가. 비단 음식업계 뿐만 아니라 특허행정도 모든 분야에서 남들보다 빨리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고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기술에 대한 특허분쟁에 있어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기술 및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이 점차 줄어들고 선진국의 무차별 특허공세와 후발국들의 매서운 추격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상황을 보면 더욱 그렇다. 특허분쟁을 빨리 해결해줘야만 우리 기업들의 신속한 의사결정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허청은 지난해 말까지 특허심판처리기간을 6개월 이내로 단축한다는 목표를 정하고 지난 몇 년간 총력을 기울여왔다. 매년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는 심판청구건수를 감안하면 다소 허황된 목표일 수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심판처리가 지연된다면 어렵사리 열매를 맺고 있는 심사처리기간 단축효과가 반감되기에 더 이상 늦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난 2005년 49명이던 심판관 정원을 2007년 99명으로 증원한 것을 비롯해 2년 만에 심판인력을 2배 이상 보강했다. 그리고 심판처리실적을 핵심 성과평가대상으로 특별 관리해 심판관들이 실적을 초과달성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심판관 증원이 기본적인 여건 마련 차원인 하드웨어적 보강이었다면 강력한 성과경영은 하드웨어를 보다 잘 운용하기 위한 소프트웨어적 보강이었다. 이밖에도 일방 당사자의 고의적 심리지연 의도를 차단하기 위해 지정기간 연장제도를 개선하는 등 심판처리기간 단축에 장애가 되는 각종 절차를 효율화했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에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인 특허심판기간을 5.9개월로 줄였다. 2003년에 14개월 걸리던 특허심판이 4년 만에 절반 이하로 단축된 것이다. 이는 가장 빨랐던 미국과 같은 수준이며 이웃나라 일본보다 약 2개월가량 빠른 것이다. 더군다나 매년 심판청구가 급증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성과다. 물론 기간 단축에만 너무 열을 올린 나머지 심판품질에는 악영향을 준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 것 같다. 특허청에 오래도록 몸담아오면서 적정 심판품질이 담보되지 않는 처리기간 단축은 모래 위에 바위성을 쌓는 것과도 같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필자는 심판처리기간 단축 못지않게 심판의 정확성도 높이기 위해 많은 조치를 취했다. 대표적인 조치가 구술심리제도를 확대시행한 것이다. 과거에는 양 당사자로부터 수 차례 그것도 순차적으로 서류를 제출받아 심리를 했지만 이제는 심판과정에서 양 당사자는 물론 대리인을 출석시켜 법정영화에서처럼 불꽃 튀는 설전을 벌이게 했다. 이에 따라 모든 증거 및 주장을 일거에 심층적으로 검토해 쟁점을 정확히 정리할 수 있게 됐다. 비록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심판품질이 오히려 향상되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측면에서 확인되고 있다. 심판품질을 측정하는 2가지 중요한 지표인 ‘심판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법원에 소제기하는 비율’과 ‘특허법원에서 결과가 뒤바뀌는 비율’이 수년째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 세계에서 가장 빠른 특허심판처리기간을 달성한 특허청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대한민국이 기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신속ㆍ정확한 심판서비스 여건조성에 나서는 등 무자년(戊子年) 쥐띠해가 ‘심판품질 제고 원년의 해’로 기억될 수 있도록 다시금 신발끈을 동여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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