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직후 극심한 경제적 혼란을 시작으로 개발연대를 거쳐온 우리는 「선경제성장-후환경보전」를 기치로 내세우며 이런 소망까지 품으면서 숨가쁘게 달려왔다. 하지만 이제 「보전과 복원의 시대」로 향한 패러다임 전환을 강제하는 세계적인 분위기가 전지구를 감싸고 있다.◇다가오는 뉴 라운드=세계무역기구(WTO) 무역환경위원회는 무역과 환경의 연계 방안을 논의중이며 결론단계로 들어갔다. 이 논의의 핵심은 이들 조치가 자국 보호주의적으로 남용되는 것은 억제하되 환경보전 목적의 합당한 무역제한조치는 인정하자는 것. 비 환경적제품에 대한 무역장벽을 둘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논의인 셈이다.
이에앞서 주요선진국은 벌써 자국 환경보전과 산업보호차원서 환경기준을 설정, 기준미달제품에 대해 일방적으로 수입을 규제하거나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행동조치에 들어갔다.
예컨대 EU는 수입 승용차배기가스 기준을 설정, 형식승인을 내주지 않고 있으며 독일은 포장 폐기물에 대한 재활용의무를 강화했고 덴마크에선 캔 음료용기 사용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밖에도 환경과 무역을 연계하는 각종 국제환경협약이 양산되고 있다. 99년 3월 현재 180여개 국제환경협약중 몬트리올의정서(CFC 등 오존층 파괴물질 규제), 기후변화협약(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바젤협약(47개 폐기물), 생물다양성협약(생물·유전자원) 등 20여개 협약이 무역규제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CITES, 즉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은 호골, 서각, 웅담 등 규제 동식물을 약재로 사용하는 제약산업, 가죽을 쓰는 피혁산업, 화훼농업 등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변하는 소비자=국제적인 변화에 맞춰 소비자들의 변신도 눈부시다. 소비자들은 다소 프리미엄을 지불하더라도 환경친화적제품을 구매하고 환경파괴 기업제품 불매운동까지 벌이겠다는 쪽으로 의식이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기존 상품의 구매결정 우선순위가 디자인 품질 가격 등이었다면 앞으론 환경이 최대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 지난 5월 20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상의클럽에서 출범식을 가진 녹색상품구매네트워크(GPN)의 등장은 한 예. 26개 시민단체와 정부 재계 연구기관 등 60여개 기관이 참여한 이 조직은 시장 매커니즘에 의한 친환경상품의 생산과 소비 활성화를 활동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내수시장에서도 비 환경제품은 소비자선택 대상에서 벗어날 수 밖에 없으며 환경경영 없는 기업생존은 불가능한 시대를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변하는 기업가치=선진국은 이미 이같은 환경경영 패러다임 변화에 눈을 떴다. 미국 IBM은 10년전부터 환경회계를 채택, 적용하고 있다. 이미 비용 9,510만달러에 효과는 비용의 2배 정도인 1억9,550만달러의 이익을 냈다. 미국 금융기관들은 최근 거래기업에 대해 환경부문에 대한 객관적 자료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일본 후지츠는 올 3월 결산기에 본사와 138개의 국내외 관계사를 연결한 환경회계를 작성한 결과 효과가 투입비용에 비해 40억엔(400억원)이나 높게 나타났다. 이 회사는 경영층의 의사결정 때 환경대책을 우선 고려하는 방향으로 경영전략을 세우고 있다. 후지츠를 시발로 마쓰시타전기산업과 소니 등도 환경회계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외국에선 기업가치를 평가할 때 환경성을 가장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잡은 지 오래됐다. IMF체제속에서 국내 기업사냥에 나선 외국투자가들은 기업의 실질가치로서 재무구조와 함께 환경성을 주요한 평가잣대로 내세웠다.
환경친화타이틀을 보유한 쌍용제지(P&G), 삼성중공업 지게차부문(볼보건설기계코리아), 삼성전자 부천사업장(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 등은 유수한 환경경영활동이 뒷받침된 덕분에 제값을 받고 신속히 매각될 수 있었다.
이들 기업은 M&A과정에서 국제적인 환경전문가 그룹을 통해 본사와 공장의 환경친화성 여부를 철저히 심사받아야 했다.
◇대그룹 확산, 전체론 걸음마=환경경영에 대한 국내기업들의 마인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전체적인 산업계 전반으로 보면 걸음마 단계라는게 총평. 한국품질환경인증협회에 따르면 올 1·4분기까지 환경경영을 인증하는 ISO14000을 획득한 사업장은 모두 316곳. 94년 3건에 불과하던 것에 비해 크게 늘어났지만 같은기간중 품질보증체제인 ISO9000이 8,884건인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다.
삼성전자는 전자레인지 등 유럽에 수출되는 주요수출품목은 아예 에코라벨 블루엔젤 등 그 지역 환경인증마크를 획득, 무역장벽에 대처하고 있다. LG그룹도 지난해 LCA(제품의 전과정평가), DFE(환경친화적 설계)를 LG기계 트랙터 생산과정에 접목시켜 환경성은 20%이상 향상시킨 반면 원가절감은 2% 개선된 결과를 얻는 등 비교적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의 환경경영은 아직 초보단계라는게 중평.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지난 상반기 『중소기업에 대한 환경경영지도가 시급하다』며 『설비개선자금 등의 직접지원 방식은 재고돼야 한다』는 보고서를 환경부에 제출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삼성지구환경연구소 김태용(金泰鏞)연구원은 『단위상품 중심의 환경대응보다 환경회계제도 도입, 환경경성적표지 적용 등 보다 체계적인 환경경영체제 도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환경경영 제도정비=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환경경영정책의 기본방향은 크게 소비자부문과 기업부문 등 2가지로 나뉜다. 소비자부문의 경우 최근 출범한 녹색상품구매네트워크(GPN)를 적극 활용, 녹색구매를 생활화함으로써 기업의 녹색생산을 유도한다는 것. 기업부문의 경우 내년 시행을 목표로 추진중인 환경회계제도와 환경성적표지제도 도입. 환경성적표지제도는 상품의 원료도입 단계서부터 가공 생산 유통 사용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의 환경성을 숫자 또는 그래프로 계량화, 소비자정보를 제공하고 나아가 반환경상품에 대한 관세장벽 강화추세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정승량기자SCH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