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CEO/한빛은행 김진만행장] "능력이 최우선" 원칙주의자

김진만 한빛은행장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다.지난해말 상업-한일 합병은행의 행장후보로 추천된 뒤, 두 은행의 기존 임원들을 모조리 퇴임시켰다. 金행장은 『단 한명만이라도 유임시키자』는 주위의 얘기를 못들은체 하면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이유로 경영진을 모두 물갈이했다. 지난해 6월 한미은행 사령탑 시절, 퇴출 경기은행을 인수하면서 『이 사람만은 데려다 써달라』는 정치권과 관가의 온갖 청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오히려 쓰고 싶은 사람도 청탁이 들어오면 쫓아냈다는 후문이다. 金행장에게 한번 찍힌 사람은 직장생활이 괴로와진다. 매사를 꼼꼼하게 챙기고 완벽을 요구하다 보니 주위 사람들이 그를 쫓아가기 힘들다. 한미은행장 시절 측근에 있던 한 간부가 지점장으로 발령받고 金행장으로부터 탈출(?)한 것을 기뻐했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그런데도 한미은행 직원들은 金행장이 한빛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못내 섭섭해하며 일부 직원의 경우 金행장이 불러만 주면 한빛은행으로 뒤따라가겠다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한빛은행의 임원들이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것도 金행장의 이같은 성격에 대해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金행장은 지난 4일 임원들을 발령내면서 이들을 모두 집행이사로 앉혀 놓았다. 정관상 비등기 이사이므로 언제든지 해임될 수 있는 처지가 된 셈. 金행장은 이들의 업무능력을 파악한 뒤 1~2명만 상임이사로 올릴 생각이다. 金행장은 원칙주의자다. 매사에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고 흐리멍텅한 것은 질색이다. 그가 합병 한빛은행장에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목소리를 높인 것이 「조직융합」이다. 불필요한 사모임을 모두 금지시키면서 인화에 보탬이 되는 등산이나 낚시 등 소모임은 권장하겠다는 것이 金행장의 「포고령 1호」였다. 한빛은행 출범 인사에서 상업과 한일은행 출신을 안분했지만, 이것이 마지막이라는게 그의 다짐이다. 앞으로는 철저하게 능력에 맞춰 인사를 하겠다는 것. 『파벌을 조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조직에서 제거하겠다. 대신 새 사람을 외부에서 데려오겠다. 파벌싸움은 공멸을 자초할 뿐』이라고 金행장은 강조하고 있다. 한빛은행은 21세기로 향하는 우리 금융산업의 시험무대다. 한빛은행은 성과위주의 업무풍토를 유도하고 과감한 외부영입을 통해 전문성을 높이는 한편 정체된 조직문화를 송두리째 바꾸기 위해 개혁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64대 그룹 가운데 절반 가량이 한빛을 주채권은행으로 삼고 있다. 자산규모 102조원으로 세계 100대 은행에 들어가는 슈퍼뱅크다. 한빛은행이 까닥 잘못될 경우 우리 경제 전체가 위험지경으로 몰리게 된다. 이헌재(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이 『한빛은행 출범은 국가적 프로젝트이므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金행장이 「국가적 프로젝트」의 사령탑으로 앉은데는 그의 특이한 경력이 크게 한몫을 했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첫 직장으로 상업은행을 선택했지만 종금사에서 상당기간 「외도」를 한데다 합작은행인 한미은행에서 경영수업을 쌓았다는 점이다. 한빛은행 직원들은 『행장의 사고방식이 이전의 행장들과 너무 달라 당황할 때가 많다』고 말한다. 金행장은 스스로를 「장사꾼」이라고 부른다. 이전의 은행장들이 「품위를 손상시키는 발언」이라며 화를 낼지 모르지만 『은행도 장사를 하는 곳』이란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요즘 자신의 권한을 축소하는데 바쁘다. 웬만한 일은 모두 본부장들에게 전결권을 행사토록 하고 있다. 최근 이사회에 외자유치를 위한 금융자문사(파이낸셜 어드바이저) 선정안이 올라왔는데, 주간사는 미국의 리만브라더스로 일찌감치 결정됐으나 부간사(파리바은행)를 둘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이사회는 담당 임원이 재량껏 정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金행장은 금융권에 몸을 담을 때부터 은행장이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던 사람이다. 그의 「모진 성격」은 영어실력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외국 유학 출신도 아니지만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단지 은행원 초년시절 4개월가량 영국 연수를 다녀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한미은행 임원시절 국제회의와 미국 파트너(뱅크오브아메리카) 접촉에 행장을 대신해 나갈 정도로 국제감각을 인정받았다. 그의 영어실력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교과서를 달달 외운데서 비롯된다. 『중학교 때부터 영어 공부에 관심이 많아 영어 책을 몽땅 외웠다』며 『회화를 잘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외우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한다. 金행장이 첫 직장인 상업은행을 떠난 것도 「국제통」이 되고 싶어서였다. 은행원 생활 10년만에 해외점포 발령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한국종금으로 자리를 옮긴 것. 75년 한국종금 조사역으로 자리를 옮긴 뒤 영업부장과 국제금융부장을 거쳐 임원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82년 한미은행이 설립될 무렵 김만제(金滿堤) 초대행장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다시 은행권에 복귀했다. 그는 한국의 금융산업이 격화되는 경쟁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제화와 함께 전산부문의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전산 시스템의 뒷받침없이는 의사결정도 늦어지고 고객들의 욕구도 재빠르게 수용할 수 없다는 믿음에서다. 스스로도 임원들과 전자우편을 통해 문서를 주고 받는다. 金행장이 취임한 지 한달이 되어가면서 여러가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첨단 마인드로 무장한 金행장이 한빛은행을 거듭나게 하고 있다』는 칭송이 있는가 하면, 『행장만 앞서갔지 은행은 바뀐게 없다』는 불만이 교차하고 있다. 금융권에선 『金행장이 한빛 직원들과 호흡을 맞추는데 적지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이 많다. 한미은행의 경우 각 은행에서 「튀던 사람들」이 한데 뭉쳐 수월하게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지만, 보수적 기질의 상업이나 한일 출신 멤버들의 마인드를 바꾸려면 행장이 더욱 분발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거함 한빛호」를 지휘하는 김진만 선장의 어깨가 유난히 무거워보인다. 【한상복 기자】 김진만 행장 약력 ▲42년 경북 군위 출생(57세) ▲경북사대부고 졸 ▲서울대 법학과 졸 ▲상업은행 입행(66년) ▲한국종합금융 이사(82년) ▲한미은행 전무(92년) ▲한미은행장(97년) ▲한빛은행장(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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