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짜고 치는 고스톱

‘국회 파행’에 ‘전면 보이콧’, 열 받은 야당 대표와 국회의원, 발끈하는 여당의 반응…. 누군가 한참 손해를 보고 비분강개하는 것처럼 들린다. 과연 그럴까. ‘심야의 날치기’가 있었다는 지난 7일 하루의 일정을 시간순으로 되돌아보자. 7일 오전 열린우리당 원내대책회의.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이 말을 꺼냈다. “결단의 순간이 왔다. 당의 명운을 걸고 8ㆍ31 후속 법안 등 쟁점 법안을 원안대로 처리할 것”이라는 게 요지다. 표결 처리 강행이 골자다. 바로 이어진 재경위 조세법안소위. 여당이 표결 처리를 주장하자 한나라당 의원 4명이 한꺼번에 나와버렸다. ‘(표결 처리) 강행한다’고 윽박지른 여당에 야당이 ‘할 테면 해보라’고 대응한 격이다. 서로 ‘너희 때문에 국회가 잘 안 돌아 간다’는 명분 싸움이었던 셈이다. 우리당-한나라당간 정책협의회를 두고도 양당은 서로 딴소리를 냈다. 이혜훈 한나라당 제3정조위원장은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은 마치 종부세 개정안과 감세안 사이의 ‘빅딜’이 성사된 것 같다는 성급한 보도까지 내놓았다. 반면 문석호 열린우리당 제3정조위원장은 오후 늦게 후속 브리핑을 자청, “종부세와 감세안의 연계 처리는 불가”라는 기본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나라당과의 빅딜을 부인한 것이다. 똑같은 회담을 두고도 왜 다른 말이 나왔을까. 서로에게 유리하게만 해석한 탓이다. 밤 10시가 넘어 열린 재경위 조세법안소위. 한나라당 의원들이 퇴장하자 바로 종부세 개정안이 표결 처리됐다. 한나라당이 막으려면 얼마든지 막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여야는 책임 떠넘기기에만 매달리고 있다. 8일 예정이었던 금산법 공청회가 돌연 취소되고 예결위를 제외한 모든 상임위 활동이 멈춰섰다. 국회 활동을 볼모로 정쟁에 몰두하는 꼴이다. 국회 파행의 책임을 우리당에 떠넘기기 위한 한나라당의 정략과 표결 강행이 국회 파행으로 이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한 우리당 강경책의 대립은 지루하게 이어질 전망이다. 불쌍한 것은 국민뿐이다. 입에서 나오는 험악한 ‘언어’와 달리 여야 의원들의 속내는 들끓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국회 공전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명분 찾기에 골몰하는 탓이다. 오죽하면 ‘속보이는 정략’ ‘선수끼리 암묵적으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까지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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