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목요일 아침에] 명의(名醫)

김희중 <논설위원>

최고의 의원은 환자의 병이 도지기 전에 고치고, 중간 정도의 의원은 병이 도지려고 할 때 고치고, 하급 의원은 병이 도지고 나서야 고친다고 한다. 예방에 힘쓰지만 병이 다시 도지지 않도록 근본적인 치료에 힘을 쓰는 것도 최고 의원의 다른 점이다. 반면 증상을 보고 나서야 치료하는 하급 의원은 치료도 치료려니와 언제 재발하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 병이 재발하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잘못 진단해 치료의 시기를 놓치면 치명적이다. 참여정부는 의사에 비유하면 어느 쪽일까. 병이 도진 뒤에야 나서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명의와는 거리가 먼 듯싶다. 말썽이 끊이지 않는 인사정책부터가 그렇다. 모두들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도 자기주장을 쉽게 굽히지 않다 보니 결국 당사자는 치욕 속에 퇴진하고 정부 인사정책의 신뢰성에도 흠집이 난다.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스스로 옳다고 여기면 어리석음의 함정에 빠지는 법이다. 장관에게도 청문회를 하는 쪽으로 해법을 찾고 있지만 유능한 인재 구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명의는 치료보다 예방에 주력 정책의 운영도 단기적인 대응에만 치중할 뿐 장기적인 전략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해에 모두들 불황을 얘기했는데 정부만 5% 성장을 자신했다. 결과는 4.6%로 나타났다. 진단이 정확하지 못했으니 처방이야 뻔한 일이 아닐까. 올해도 일부 지표가 개선되고 경기에 대한 기대심리도 좋아지고 있다지만 서민들의 느끼는 피부경기는 전혀 좋아진 게 없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도 ‘경기호전’을 강조하고 있다. 외국자본의 횡포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이제서야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행정도시이전 문제도 종합적인 진단과 처방이 이뤄지지 않아 갈수록 꼬이고 있다. 국가대계를 염두에 둔다면 보다 치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격다짐으로 치료할 상황은 아닌 듯싶다. 외교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렇다 할 처방도 없이 상처만 자꾸 덧나는 꼴이다. 오죽하면 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적을 분명히 하라”고 했을까. 일본과의 관계는 좀더 냉정하고 치밀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시마네현의 독도조례로 일본은 독도를 국제분쟁지역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우리의 대응은 독트린을 발표하고 국민궐기대회를 여는 등 핏대를 올릴 뿐 근치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일본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몇 마디 발림말로 우리의 감정을 누그러뜨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몇 마디 사과로 넘어가서는 안될 일이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도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의 버르장머리가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가 ‘통석(痛惜)의 염(念)’과 같은 일본의 말장난에 쉽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정부정책 사후약방문 지양을 유대인에게 만행을 저지른 독일은 유대인들이 오래전에 용서를 했데도 아직까지 조상들의 잘못을 사죄하고 있다. 쾰러 대통령은 얼마 전 유대인 학살박물관 기념식에 초청돼 눈물을 흘리며 또 죄를 빌었다. 그러나 일본은 어떠한가. 아직도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우긴다. 일본 수상은 잊혀질 만하면 2차대전 전범들의 위패와 위물 등을 모신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다. 교과서 검정 때마다 다른 나라의 땅을 자기 땅이라 우기며 후손에까지 왜곡된 역사를 전수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국사교육을 천시하고 있다.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 ‘사죄하라’고 악을 써봐야 사죄할 일본이 절대 아니다. 방법은 힘을 기르고 국제사회에 우리의 주장을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 분노를 즉각 분출하면 가슴은 시원할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에게 약점만 보이게 된다. 그래서 칼은 칼집에 있을 때가 더 무섭고, 백마디 말보다는 침묵이 더 강할 때도 많은 법이다. 명의가 예방에 힘쓰되 일단 치료하면 재발하지 않듯이 개원한 지 벌써 2년이 지난 만큼 참여정부의 처방도 이제는 보다 정교해야 한다. 단기적인 대응은 상처를 덧나게 하고 병을 더욱 깊게 할 뿐이다. 특히 병이 안 낫는다고 극약을 처방하는 일은 더더욱 삼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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