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국감 이제 이대론 안된다

폭로등 '고질병'과 결별 입법·제도개선 충실해야

“국회 국정감사는 입법과 제도개선의 핵심이다.” 오는 10월6~25일 실시되는 국감을 일주일여 앞두고 국회가 국감에서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국감은 지난 1988년 부활된 지 21년째를 맞은 18대 국회 첫 국감으로 국민적 기대감이 높고 대내외적인 경제여건 악화에 따라 소모적인 정쟁으로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는 만큼 구태를 벗고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 변화의 방향은 무엇보다 국감이 국민의 권익을 향상시키는 입법과 제도개선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국감을 헌법과 법률이 정한 대로 정상화하자는 뜻이다. 국감은 본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실태를 보다 정확히 파악, 입법활동과 예산심사에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획득하고 국정 감시ㆍ비판을 통해 잘못된 부분을 적발ㆍ시정하는 것이다. 이는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입법ㆍ예산심사ㆍ국정통제 등 대표적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헌법상의 국회 권능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28일 “군사독재 시절 국감은 야당이 정권을 비판ㆍ견제하는 장치였다”며 “그러나 민주화 이후 국감은 본래 기능보다 폭로나 정치감사에 빠진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김민전 경희대 국제지역학부 교수는 “국감을 짧은 기간에 모든 부처에 걸쳐 하다 보니 수박 겉핥기식이 돼왔다”며 “특히 의원들이 입법 기초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기회라기보다는 각 정당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유용한 자리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국감 정상화는 우선 국감 고질병과의 과감한 결별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국회는 해마다 국감에서 국회의원의 폭로성 한건주의, 고압적인 행정부처 군기잡기, 인기영합주의, 무차별적인 자료제출 요청 및 증인ㆍ참고인 채택 등을 되풀이해왔다. 개인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재판 계류 중 또는 수사 중인 사건까지 국감 대상에 올라 논란을 빚었다. 고질병 치유와 함께 국회가 문제의 핵심을 파고 들어 국민의 혈세를 바탕으로 정책을 집행하는 행정부를 실효적으로 감시ㆍ견제하되 정부와 기업의 애로 등 생생한 현장 목소리를 들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국회가 국감에서 미국발 금융위기와 서민경제 악화, 한반도 정세 불안, 사회계층 간 갈등ㆍ반목 등에 대한 해법을 찾고 국가의 통합과 발전을 모색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국감은 당초 도입취지와 달리 많은 비효율을 낳았다. 국감이 진행되는 20일간 모든 행정기관이 국감에 매달려 행정마비ㆍ국정마비를 야기하고 예산낭비ㆍ행정낭비를 가져왔다. 의원들은 핵심 문제점을 지적하지 못하고 수감기관장에 대한 호통과 장광설을 쏟아냈다. 장관과 공공기관장은 국감장에서 의원들의 추궁에 “참 옳으신 지적이다”, “적극 검토한다”고 답변만 하면 그만이다. 사후조치나 점검ㆍ감사는 국회건, 행정기관이건 관심 밖인 셈이다. 결국 “이런 국감 왜 하느냐”는 국감 무용론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국감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번 국감 또한 정책감사보다는 여야간 이념대결, 정치공방 등 정치감사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해 국감은 10년만의 정권교체에 따라 여야가 뒤바뀐 상황에서 처음 실시돼 이미 치열한 정쟁의 장이 예고됐다.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의 좌편향 정책과 법률을 바로잡아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벼르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은 이명박정부의 권력형 비리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이른바 ‘언니 게이트’, ‘사위 게이트’ 등을 집중 추궁할 태세이다. 이에 따라 이제는 국감이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국감 결과가 입법과 제도개선의 바탕이 되고 수감 기관장 인사의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기반 마련의 필요성이 거론된다. 또 지금처럼 매년 20일에 걸쳐 한꺼번에 전국 500여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몰아치기식 감사를 지양하고 상시국감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관심을 끌고 있다. 국감이 생산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의원들의 자세 변화 뿐만 아니라 수감기관의 충실하고 신속한 자료제출과 채택된 증인ㆍ참고인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수감기관의 자료제출과 증인ㆍ참고인 채택은 법률로 규정돼 있지만 이 같은 규정은 종종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아울러 국회가 국감에서 지적한 정책이나 시정을 요구한 사항이 나중에 제대로 추진되고 고쳐졌는지 등을 반드시 확인하고 점검하는 시스템도 마련돼야 한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최근 이와 관련,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고 민의를 반영해야 하려면 항상 열려 있는 상시국회가 돼야 한다”며 “국감제도를 본질적으로 검토하고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장이 지난 8월 말 국회의장 직속으로 구성한 ‘헌법연구ㆍ국회운영개선 자문기구’를 통해 국감제 개선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김민전 교수는 “생산적인 국감이 되려면 기관 중심의 감사보다는 정책 중심의 감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행정부처 공무원을 무조건 불러놓고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이 아니고 예컨대 금융정책과 관련 정부 당국자 뿐만 아니라 은행 등 시장 관계자 등 이행 당사자를 모두 불러 문제가 되는 정책이 뭔지 분명하게 밝힌 뒤 입법에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형준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20일의 기간을 정해 국감을 하는 나라는 없다”며 “이걸 바꾸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만큼 우선 연중감사는 아니더라도 모든 공공기관을 매년 한꺼번에 감사하지 않고 대상을 절반씩 격년으로 나눠 감사함으로써 감사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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