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 악재 속출..끝없는 가시밭길일본 경제가 '3월 위기설' 불발의 안도감과 월드컵 효과에 대한 기대 등으로 인해 4월 이후 천천히 기지개를 켜왔다. 하지만 하야미 마사루(速水優) 일본은행 총재는 "경기 하락세에는 분명 제동이 걸리고 있지만, 미 경제 및 외환시장 동향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미국이 일본 경기에 악재가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미국 회계부정 스캔들과 그에 따른 뉴욕 증시 붕괴, 달러화 폭락 등 일련의 사태는 일본 경제에 다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일본은 경기 부양과 함께 쫓고 있는 또 한 마리 토끼 사냥에도 적잖은 차질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우려된다. 바로 '구조개혁'이다.
재계를 대표하는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일본경단련 회장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현재 개혁 성과에 대해 100점 만점 가운데 '15점'이라는 점수를 매겼다. 이는 바꿔 말해 일본 경제가 고이즈미 개혁에 대해 내린 중간성적표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성역없는 구조개혁을 통해 일본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믿음은 이미 일본인들의 기억 속에서도 아련해졌다. 그동안 사상 최악의 기업도산과 고실업 속에서 "이 정도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논리를 반복해 온 고이즈미 총리에 대해 한때 80% 이상의 맹목적인 지지를 보냈던 많은 일본인들도 등을 돌렸다. 그에 대한 지지도는 이미 50%를 훨씬 밑돌고 있다.
사실 오늘날 일본 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고이즈미 총리 취임 당시부터 어느 정도 우려됐던 일이다. 고이즈미 정권이 떠안은 양대 과제인 구조개혁과 경제 활성화는 어찌 보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해 뛰어가고 있는 두 마리 토끼인 셈이다. 비효율적인 경제ㆍ사회ㆍ정치 구조를 뜯어고치기 위해선 한시적으로 경기가 안 좋아지고 실업이 늘어나는 등 단기적으로 부담이 커지는 것은 예고됐던 일. 구조개혁의 성과가 한두 해 사이에 가시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애초부터 경고됐던 일이다.
하지만 정도가 문제다. 경기는 당초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게 얼어붙었고, 개혁은 사사건건 반대에 부딪쳐, 국민들은 물론 해외 투자가들의 인내력의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고이즈미 정부 출범 이후 각 분야의 개혁안에 관한 기사는 연일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있지만, 이는 모두 실체없는 구호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국내외 언론의 지적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고이즈미 총리가 개혁 반대세력과 타협하느라 공약을 지키지 않고 있으며, 정부가 추진중인 우정사업 개혁안 등에 대해서도 "당초 총리가 내세웠던 목표에 비하면 만화 수준"이라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도 최근 고이즈미 총리가 자민당의 당파정치 자락에 매달려 구조개혁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며, 그를 '일본의 고르바초프'라고 비꼬았다. 폴 오닐 미 재무장관은 얼마 전 일본정부에 대해 "개혁의 증거를 보여달라"며 눈에 보이는 결과를 요구했다.
그렇다고 고이즈미 개혁이 좌초된 것은 아직 아닌 듯 하다. 지난 24일 참의원은 고이즈미 개혁의 중대 축을 이루는 우정사업 민영화 관련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켜 일본의 구조개혁이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우려를 조금이나마 불식시켰다.
고이즈미 총리는 또 내년 4월로 예정된 원리금 전액보호제도 폐지에 대한 거센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당초 계획을 지연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짐, 개혁의지의 불씨가 죽지 않았다는 기대를 되살리고 있다. 이 같은 추세를 반영, 지난 22일 현재 고이즈미 총리의 지지율은 지난달보다 10%포인트 높아진 47%까지 회복됐다.
지난 1년여 동안 '입운동'만 해온 고이즈미 개혁에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시동이 걸리는 것인가, 또 한 차례의 '헛된 기대'가 더 큰 실망만 안겨주는 결과를 낳을 것인가.
신경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