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9월2일] <1490> 불타는 애틀랜타


‘포격과 방화, 약탈의 애틀랜타. 거대한 목조건물이 불타 쓰러지는 사이로 마차는 간신히 도시를 빠져나왔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이다. 여주인공 스칼릿 오하라로 분장한 비비언 리가 애틀랜타를 탈출하는 이 장면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할 것일까. 그렇다. 공격하는 북군의 포격과 철수하는 남군의 물자소각으로 폐허로 변하는 애틀랜타의 현실을 영상에 담았다. 남군이 빠져나간 다음날인 1864년 9월2일 애틀랜타를 점령한 북군의 지휘관은 윌리엄 테쿰세 셔먼 소장. 5월부터 병력 우세를 발판 삼아 진군을 시작한 셔먼은 애틀랜타에 당도하기까지 크고 작은 16차례의 전투에서 백중세를 기록했으나 갈수록 악명을 떨쳤다. 철저하게 파괴했기 때문이다. 셔먼은 철도에서 목장, 면화밭, 대형 건물에 이르기까지 남부의 전쟁수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파괴하고 불태웠다. 셔먼이 지나간 자리는 1990년대에 이르러야 복구가 완료될 만큼 잿더미로 변했다. 남부의 증오가 얼마나 깊었는지, 평양 군민들의 공격으로 불탄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의 소식이 알려졌을 때 애틀랜타에서는 ‘원수를 대신 갚았다’는 말이 돌았다. 2차대전 중에는 남부 출신 기갑병이 셔먼의 이름을 딴 M-4셔먼 전차의 탑승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셔먼이 초토화한 애틀랜타 점령은 미국의 역사를 바꿨다. 지지부진한 전황 때문에 재선 여부가 불투명했던 링컨이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고 남부와의 휴전 논의가 사라졌다. 세계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후 미군 총사령관에 지명돼 미국 최초의 4성 장군 계급까지 받은 셔먼은 자신의 이론을 전략의 기본으로 삼았다. 셔먼의 병법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무차별 포격과 초토화를 통한 충격과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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