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9월 5일] 아직 안전띠 풀 때 아니다

허리케인 구스타브가 갑자기 힘을 잃고 지나가자 뉴올리언스를 떠났던 주민들이 되돌아왔다. 3년 전 카트리나가 루이지애나의 제방을 무너뜨리며 수많은 사상자를 낸 기억이 있기에 그들은 살던 곳을 유령의 도시로 만들며 허겁지겁 도망갔고 구스타브가 별탈 없이 소멸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이다. 9월이 열리면서 국내 금융시장에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10년 전 금융위기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투자자들은 패닉 상태로 시장을 떠나갔다. 환율이 하루에 몇 십원씩 치솟고 주가가 바닥을 모른 채 꺾어졌다. 정부가 뒤늦게 진화에 나서고 뉴욕 월가의 유력자들이 멘트를 날리면서 9월 위기설은 가라앉는 듯 싶다. 일단 9월 위기가 없다는 정부 당국자들의 말을 믿고 싶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이 든든하고 보유외환이 넉넉하므로 웬만한 폭풍이 다가와도 방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아직은 금융시장이 시장이 안정됐다고 낙관하기는 이르다. 또 다른 허리케인이 언제, 어디에서 다가올지 모르는 불안정한 기상 여건이다. 우선 국제금융시장의 상황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양대 국책모기지 회사인 패니메와 프레디맥의 부실이 갈수록 깊어지고 연방정부의 구제금융이 나오지 않는 이상 파산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두 회사 중 하나가 무너지면 그 파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보다 클 게 분명하다. 베어스턴스보다 더 큰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도 한국산업은행에 인수하라고 요구할 정도로 위태롭다. 미국 은행들이 발행한 단기채 만기가 9월에 집중돼 있어 뉴욕 월가를 짓누르고 있다. 내년까지 미국은행의 100여곳이 파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의 미국 금융위기는 아직 절반도 지나지 못했고 아직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았다는 경고도 경청할 만하다. 알리스테어 달링 영국 재무장관은 지금 글로벌 금융위기는 60년 만에 최악이라고 고백성 발언을 했다가 자국 금융시장이 크게 패닉 상태에 빠져 혼쭐이 나기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난 1930년대 대공황을 초래한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라는 것이다. 선진국 금융시장만 불안한 게 아니다. 태국에서는 5월 이후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면서 우량기업마저 해외에서 자금조달을 하지 못할 정도로 신용을 잃었다. 이러다가는 1997년 태국발 이머징마켓 위기가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온다. 지구촌 어느 구석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빠른 속도로 위기가 전파되는 게 현대의 글로벌 경제다.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불안이 가장 약한 고리가 끊어지고 그곳에서 생긴 허리케인이 우리 시장에도 다가올 수 있다. 바깥에서 아무리 거센 폭풍우가 불어닥쳐도 내부 단속을 잘 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문제는 국내 금융시장이 확인되지 않는 루머와 페이퍼에 휘둘릴 정도로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투자자들이 정부를 믿지 않고 시장 감독의 책임을 진 정부도 불특정다수의 탓으로 돌리는 괴리 현상이 시장 불안을 가중시킨 것이다. 금융시장에 거센 바람이 잦아들었다고 안전벨트를 풀어서는 안 된다. 전통적으로 9월과 10월에 국제금융시장의 심장인 뉴욕 증시의 변동폭이 커진다. 1987년 블랙먼데이,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경영위기도 이 무렵에 터졌다. 위기는 기회를 만든다. 단기적으로는 정부가 시장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단기책으로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최근의 금융 불안은 국내에 들어온 해외자금이 모국의 금융 부실을 해소하기 위해 빠져나가면서 발생했다. 금융시장의 주력이 해외 핫머니로 구성돼 있을 때의 서러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역으로 금융시장의 주권을 회복하는 좋은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그러자면 국내 자본이 유가증권시장으로 흘러가도록 유인하는 장기적인 대책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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