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내는 그래도 선대부터 50여년을 이어온 가업을 내놓은 결정 자체는 평가할 만하다. 투자자들에게 내줘야 할 1,300억원의 보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매출 9조원짜리 알짜기업을 매각하는 데 아쉬움이 많았을 터인데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LIG손보 임직원들에게 보낸 옥중서신의 '투자자 피해보상의 사회적 책임을 온전히 다하겠다'는 대목에서는 처연한 감정까지 느껴진다.
그룹의 사실상 붕괴까지 감수한 구 회장의 결단은 기업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소한의 윤리를 떠난 기업경영과 신뢰를 잃은 기업인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기업이야 어찌 되든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과거의 사고방식과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산다'던 통념은 이제 시장에서도, 법정에서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수많은 투자자들을 기만한 구 회장 부자의 비도덕적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구 회장의 마지막 결단만큼은 이 땅의 기업 오너들이 가슴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업무상 배임과 횡령으로 기업을 개인의 사금고처럼 악용해 감옥에 가고도 반성하지 않는 악덕 기업인들은 아직도 많다.
우량기업인 LIG손보도 보다 나은 길을 찾을 수 있게 됐다. 당장 LIG손보의 주가가 연 이틀 상승했다는 점은 오너 리스크가 기업의 존속과 발전에 얼마나 큰 장애물이 되는가를 말해준다. LIG손보 매각 소식을 접한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도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현 회장뿐 아니라 기업에 치명적 손실을 입힌 기업주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기업을 놓아주는 게 죄과를 씻는 가장 빠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