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4월 30일] 새것과 헌것

다른 사람들이 볼세라 어머니 치마폭에 숨겨와 몰래 주신 껌 반쪽을 잊지 못한다. 빨리 씹으면 단물이 쉽게 빠질 것 같은 불안감에 한 번 씹고 쉬었다 씹기를 하루 종일 반복하다가 누가 보지나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캄캄한 밤 움푹 파인 벽 한구석에 붙여두고 벽지까지 붙어 나오는 껌을 다시 떼어 반년 가까이 씹었던 어린 시절. 그 시절의 헌것에 대한 소중함과 그리움은 지금도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장날 시골장터에 따라나서 세발자전거 새것을 사달라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던 그 당시 내 모습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라는 졸업식장에서 불려지던 근검절약의 노래와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하고 새것을 갈망하는 노래는 물자가 턱없이 부족했던 극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새것을 갈망하는 인간의 심리적 욕망과 갈등을 여실히 드러내놓고 있다. 이 두 노래에 담긴 내용처럼 새것과 헌것은 적절한 조화와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발전시켜온 것 같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웬만하면 헌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으니 걱정이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현 세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절약하고 아낄 줄도 아는 습관까지 사라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새것만 추구하면 영원함을 얻기 어렵고 헌것을 고집하면 발전이 없으니 어느 것도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매사 이치처럼 새것과 헌것 중 어느 한편에만 치우치게 되면 개인이든 집단이든 불행해질 수 있다. 그런 점에 비춰본다면 나는 헌것의 소중함과 새것의 풍요로움을 함께 맛본 세대이니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두 것의 대비로 느끼는 행복감은 나만의 특권이리라. 새것과 헌것은 각자의 내면 속에 있는 것이라 탐욕을 버리고 절제하며 베풀고 섬기면서 살아가자고 다짐해보건만, 새것도 결국 시간이 지나가고 세월이 흐르면 바로 헌것이 되는 간단한 이치도 깨달을 나이도 되었건만, 아직도 새것을 탐하고 그리워하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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