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뜨거운 가슴ㆍ냉철한 머리

서울에서 싱가포르를 거쳐 23시간만에 도착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남쪽 해안 도시 더번은 이제 막 봄을 맞이하고 있다. 새싹이 돋아나고 꽃도 피고. 이렇게 먼 곳까지 온 것은 이곳에서 열리는 세계농업경제학회와 농업경제연구기관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번 회의는 `사회에 대한 농업의 역할 재정립`이란 주제로 열리고 있는데 세계 각 곳에서 700여명의 농업경제학자가 모였다. 오늘 첫날 첫 번째 발표자가 인용한 미국의 농업경제학자 슐츠의 노벨경제학상 수상 연설문이 인상적이었다. “세계 인구의 대부분은 가난하며 따라서 우리가 빈곤을 안다면 경제학이 고민하는 문제의 많은 부분을 알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농민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농업경제학을 알게 되면 경제학의 많은 부분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선진국에서는 국민들의 대부분이 가난하지 않다. 우리나라도 국민의 대부분이 가난하지 않다. 그러나 농민들의 소득이 더 낮고 열악한 삶을 사는 것은 선진국이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이고 그런 의미에서 슐츠의 연설문은 나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왔다. 세계 농산물 가격은 하락하고 농민들의 소득문제가 어려워지는 것, 이것이 지금도 세계 모든 나라들의 공통된 고민거리이다. 경제학자들이 시장개방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 문제에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 농민들은 언제까지 시장개방에 반대하며 교통을 마비시켜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경제학자는 언제까지 시장개방의 불가피성만을 외치고 있을 것인가. 경제학자들은 미국과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옛날부터 그리고 지금도 또 앞으로도 왜 농가의 소득지지제도에 많은 재정을 투입하려고 하고 있는지, 미국과 호주 사이의 FTA가 왜 몇 가지 농산물 때문에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지, 호주와 브라질 사이에서조차 농산물 교역이 왜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농민들은 FTA를 거부하면 농업이 잘 될 것인지, 농가의 삶이 나아질 것인지, 정말 대안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경제학자는 농가가 가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줄여줄 수 있는 시책을 찾아야 한다. 농가는 국토를 아름답고 깨끗하게 보전하여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소비할 수 있는 품질 좋고 안전성 높은 농산물을 생산함으로써 납세자들이 농업을 위한 재정부담을 기꺼이 수용하게 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오늘 지구의 반대편에서 다시 생각해 본다. 근대 경제학의 문을 연 마샬이 했던 이야기를. “경제학자는 뜨거운 가슴으로 현실을 보고 냉철한 머리로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이정환(농촌경제연구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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