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이면 서울 성북동에는 긴 줄이 등장한다. 이유는 오직 하나. 일년에 단 두 번 열리는 간송미술관 정기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함이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금동산존불감(국보73호)' 같은 국보급 문화재는 이때를 놓치면 반년 후에나 볼 수 있다. 그 중 압권은 한글창제의 원리와 사용법 등을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 이곳이 아니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귀중한 자료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어 신하에게 공개한 3년 후인 1446년 9월 정인지ㆍ성삼문ㆍ신숙주 등 8명의 집현전 학자들에게 명해 만든 해설서다. 문자를 만든 목적과 원리, 표기방법 등이 총 3부33장에 걸쳐 설명돼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라는 훈민정음 본문은 1부4장7면에 걸쳐 쓰여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해례본은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 백성들에게 함께 배포됐지만 이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해례본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500년이 지난 1940년. 경북 안동 광산 김씨 종택인 긍구당 고택에 있던 것을 수집가 전형필 선생이 오랜 노력 끝에 찾아내 자신이 세운 간송미술관에 전시했다. 기와집 20채 값인 1만원(현재가치 약 60억원)을 지불했지만 최고의 보물을 찾았다는 기쁨이 먼저였다. 이충렬씨의 '간송 전형필'은 이때의 감동을 "밤이 새도록 읽고 또 읽었다… 눈물을 흘리다가는 웃었고 웃다가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갈 때도 품 속에 품었고, 잘 때는 베개 속에 넣고 지켰다"고 표현했다. 이렇게 돌아온 해례본은 1962년 국보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간송미술재단이 서울디자인재단과 손잡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내년부터 2017년까지 장기 기획전을 연다. 내년 3월 첫 개관전시 때는 훈민정음 해례본도 등장한다. 일년에 두 번밖에 볼 수 없었던 아쉬움을 덜고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는 더 없는 기회다. 외래어가 난무하고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로 언어파괴가 극심한 지금 우리말의 소중함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