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밀운불우(密雲不雨) 경제

올해 교수들이 선정한 사자성어로 ‘밀운불우(密雲不雨)’가 꼽혔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비가 곧 올 법도 한데 고대하던 비는 내리지 않는 답답한 심경을 이르는 말이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꼬집었다. 상생정치의 실종과 대통령의 지도력 부재, 부동산 가격 폭등과 세금 중과, 북 핵실험,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 등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거북등처럼 갈라진 논바닥을 지켜보는 농부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잔뜩 낀 먹구름 비는 오지 않고 경제만 한번 둘러보자. 매일 나오는 통계는 악화일로다.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사람이 올해만 10만명으로 사상 최대다. 기업으로 치면 부도를 낸 사람이 그만큼이나 많다는 얘기다.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심경이 오죽할까. 바로 밀운불우를 맞는 농사꾼의 심정일 것이다. 취업시장은 수년째 가뭄을 겪고 있다. 단비가 언제 내릴지 기약할 수도 없다. 하늘을 쳐다보지만 목만 아플 뿐이다. 올해 20대 취업자는 지난 84년 이후 22년 만에 가장 적다. 내년에도 고용시장은 가뭄이 계속될 전망이다. 국내에서 그런대로 괜찮다는 500대 기업은 내년 채용 규모를 올해보다 5.1% 줄인다고 하니 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자리 얻기가 어렵다 보니 이제는 아예 구직을 포기하는 사람도 급격히 늘고 있다. 젊은이가 구직을 포기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사자의 고통도 고통이려니와 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은 필설로 말하기 어렵다. 수년째 작황이 좋지 않다 보니 이제 우리를 바라보는 안팎의 시선도 날로 싸늘해지고 있다. 갤럽인터내셔널이 세계 57개국 4만8,500명을 대상으로 새해 경제전망을 조사한 결과 한국인은 절반이 넘는 51%가 내년 경제가 나빠질 것으로 대답했다. 그리스와 포르투갈에 이어 꼴찌에서 세번째인 55위에 그친 기록이다. 이 때문에 한국인이 경제적으로 ‘우울증’에 빠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나라 밖에서는 한국 경제가 정책 마비에 빠졌다는 혹평까지 들린다. 우리 경제는 성장률이 갈수록 떨어져 결코 일본을 따라잡기 힘들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모두 답답하고 우울한 이야기다. 그러나 비가 오지 않는다고 농사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희망까지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햇빛이 쨍쨍 쬐는 것보다는 그래도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게 더 낫지 않은가. 구름이 흩어지지 않고 계속 모이다 보면 언젠가 비는 내릴 것이다. 옛말에 궁즉변 변즉개 변즉통(窮則變 變則改 變則通)이라고 했다. 막힌 것은 언젠가는 뚫리는 게 세상의 이치다. 지금 당장 막혔다고 해서 답답해 하고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어렵고 힘든 고비를 참고 극복해야 한다. 어둠이 있기 때문에 빛이 있는 것이다. 뭐든지 부정적으로만 보면 나쁜 점만 보이게 마련이다. 우리에게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호환(虎患)보다도 무섭다는 외환위기도 최단시간에 극복했던 우리다. 최고경영자들이 내년 경제를 어둡게 보고 국민들도 경제에 비관적이지만 상황만 바뀌면 언제든지 일어설 수 있다. 가전ㆍ자동차ㆍ선박 등 모든 부문에서 일본과 어깨를 겨루고 있지 않은가. 어둡게 보면 한없이 어둡고 밝게 보면 한없이 밝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인생사 생각하기 나름이다. 새해 단비 내려 풍년가 불렀으면 마침 내년은 대통령 선거라는 굵직한 행사가 치러진다. 일부에서는 대통령 선거 때문에 경제가 더 엉망이 될 것이라고 걱정들이다. 그러나 우리 하기에 달렸다. 우울증에 빠진 경제를 살려낼 수 있는 명의(名醫)만 제대로 찾아낸다면 우리 경제는 심기일전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믿고 싶다. 다행인 것은 지금 야권에서 거론되는 후보나 여권에서 꿈틀대고 있는 용들이 대부분 검증 절차를 거쳤다는 점이다.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새해는 황금돼지해라고들 한다. 돼지를 잘 키우고 또 그 돼지를 잘 키워 기우제에 바치고 비를 내리게 한다면 내년 이맘때쯤 사자성어는 만사형통(萬事亨通)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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