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를 등에 업은 사무라이 자금이 국내 금융사와 기업체를 잇달아 사들이면서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당장 제조업체들이 구조조정 과정을 겪는 틈을 타 인수에 나서는가 하면 금융계에서도 옛 푸른2저축은행을 인수한 오릭스가 이번에는 중형 금융회사인 스마일저축은행을 품에 안는 등 시장확대에 가속을 내고 있다. 투자처가 마땅치 않은 일본계 자금이 전방위로 손을 뻗치는 것으로 일각에서는 국부유출 우려도 나오고 있다.
3일 산업ㆍ금융계와 관계당국에 따르면 오릭스저축은행은 지난 1일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스마일저축은행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오릭스저축은행의 총자산은 6월 말 현재 6,095억원으로 1,765억원 규모의 스마일저축은행을 인수해 전국망을 갖춘 중형 저축은행으로 발돋움할 방침이다.
오릭스 측은 우리금융 민영화로 매물로 나올 우리파이낸셜에도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릭스저축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국적으로 갖춰져 있는 점포망 등을 보고 인수를 시도했다"며 "본계약서 작성 때까지 조정의 여지가 있고 금융위원회의 승인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계의 금융권 공략은 최근 들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최근 일본계 친애저축은행은 SC금융지주 계열사인 SC캐피탈 인수의향서(LOI)를 받아갔다.
SC캐피탈은 SC금융지주가 계열사 구조조정을 위해 내놓은 매물로 캐피털시장에도 발을 넓히려는 의도다. 친애는 J트러스트의 자회사 KC카드사가 미래저축은행을 인수해 사명을 바꾼 것으로 업계에서는 공격적인 영업으로 이름이 났다.
6월 말 현재 총자산이 1조1,459억원으로 옛 솔로몬저축은행과 HK에서 각각 3,269억원과 1,736억원 규모의 소비자대출채권을 사들이기도 했다.
앞서 업계 1위였던 옛 현대스위스저축은행도 일본계 SBI그룹이 인수했다.
3월 2,375억원의 유상증자로 경영권을 확보한 SBI는 직후 금감원 검사에서 경영개선 대상이 돼 8월 2,434억원을 유상증자했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말까지 추가로 유상증자를 실시한다. 수천억원의 증자대금이 투입되는 셈인데도 SBI 측은 한국 시장을 놓지 않고 있다.
동양사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동양증권도 5월 일본 다이요생명을 대상으로 300억원 규모의 후순위전환사채(CB)를 발행하기도 했다. 동양그룹과 이름이 같아 최근 고객들이 동요했던 동양생명도 다이요생명이 지분 4.9%를 갖고 있다.
이외에 대부업계 1ㆍ2위인 러시앤캐시와 산와머니도 일본계로 엔화자금이 바탕이 됐다.
조건이 까다롭기는 하지만 대부업체의 저축은행 인수길이 열리면서 이들은 저축은행을 가질 수도 있게 됐다. 이중 러시앤캐시는 계속 저축은행 인수를 위해 문을 두드려온 상황이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일본 은행들도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
미쓰이스미토모 등은 다소 감소했지만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의 6월 말 현재 국내 총여신은 3조5,093억원으로 지난해 6월보다 1,150억원 늘었다.
산업계에서도 일본계 자금 유입은 두드러진다.
오릭스는 7월 STX에너지를 6,500억원에 사들였는데 최근 1조원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발전소 사업을 담당하는 회사가 일본으로 넘어간 뒤 값이 뛰면서 국부유출 논란도 일고 있다.
지난달의 KT 회사채 발행 수요예측에서는 일본계 은행이 1,500억원을 신청하기도 했다. 동양그룹과의 인연으로 2월 동양시멘트 유상증자에 203억원을 쏟아부었던 다이요생명은 동양시멘트의 전격적인 법정관리 신청으로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일본계 자금이 전방위로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은 일본 내 저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으로 해외에서 사업기회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계 은행들의 동남아 무역금융시장 점유율은 2011년 13%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53%로 급증했다. 유럽 재정위기로 유럽계 은행들이 주춤하는 사이 일본과 중국 은행들이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 우리나라는 경영문화도 비슷한 부분이 많은데다 지리적으로도 유리한 측면이 크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양적완화 정책에 따라 일본 자금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알짜 금융사나 기업체가 일본 기업에 넘어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