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중기청장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


한정화 중소기업청장은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장을 지낸 학자 출신이다. 학자 치고 공직에 나와 좋은 평가를 받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그동안 기자가 만나본 정치인, 중소기업인, 고위관료(출신)들 대부분은 한 청장에 대한 칭찬을 빼놓지 않았다.

우선 할 말은 하는 추진력이다. 국회든 다른 경제부처든 눈치 보지 않고 소신있게 정책을 설득하는 모습에서 유약한 학자의 모습은 찾기 힘들다는 전언이다. 학자적 양심에 따라 공평무사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는 인물평도 나온다. 간부회의 시간에 즉석 토론을 유도하는 소통 스타일 역시 취임 초기 중기청 안팎에서 화제였다.

그런 한 청장이 지난 21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보인 모습은 웬지 어색했다. ‘벤처 브레인’으로 불려온 그가 이익단체인 벤처기업협회의 일방적 주장을 검증없이 발표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어서다.


이 자리에서 한 청장은 매출 1,000억원 이상 벤처기업(벤처천억클럽)의 총 매출액이 101조원으로 재계 5위 수준이라며 벤처정책의 실적을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2005년부터 나온 ‘벤처천억기업 성과론’은 줄곧 과대포장됐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일례로 벤처천억기업 454개 중 36%가 1950~80년대 창업해 이미 기반을 탄탄히 잡았던 회사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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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인증 제도가 시작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이다. 안정적인 사업구조을 갖췄거나 매출 규모가 큰 기업들에게 한참 뒤에 벤처 마크를 붙여주고 “당신들이 이렇게 성장한 것은 온전히 이 마술같은 벤처도장 덕”이라는 건 억지에 가깝다.

기자간담회에서 기자가 이런 점을 지적하자 한 청장은 “1997년 이후 체계화된 정책이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1980년대초부터 나온 기술집약형 중소기업 지원 정책의 성과와 같이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는 그간 중기청이 “1990년대 중후반 본격화된 벤처 정책의 씨앗이 어떤 성과를 냈는지 진단하고 벤처의 성공모델과 미래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혀온 벤처천억기업 조사의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이다.

정확한 실태조사와 통계는 정책의 기초다. 한 청장 말대로 백번 양보한다 해도 1980년대 이전 창업 기업들은 최소한 이 통계에서 빼는 게 학자적 도리다. 박근혜 정부 들어 입각한 ‘벤처라인’중 한 사람인 한 청장이 그동안 벤처업계와의 정리 탓에 객관성과 중립성을 잃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법하다.

중기청과 벤처기업협회가 벤처 정책과 벤처천억기업 성장과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논증하거나, 아니면 벤처정책이 태동한 1990년대 이후 창업기업들만 벤처천억기업 통계로 잡는게 상식이 아닐까. 저명한 교수였던 한 청장은 이를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일까.

/supia927@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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