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스웨덴의 마그너스 에릭슨(LARS MAGNUS ERICSSON)이 전신장비 수리 가게를 설립함으로써 탄생한 에릭슨은 오늘날 세계적인 통신기기 제조 공급업체로 성장했다. 특히 이동통신 분야에서는 시장 리더의 자리에 오를 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통신업계의 초우량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120여년의 사업 경험을 기반으로 통신사업 분야에서 차별적 역량을 구축해 온 에릭슨은 1997년 전년대비 약 35% 신장한 약 1,677억 SEK(약 206억달러)의 매출을 올렸으며, 약 172억 SEK(약 21억달러)의 세전이익을 달성했다. 종업원 수만 해도 10만명을 상회하고 있으며, 130여개국에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무분별한 다각화로 위기 자초
그러나 에릭슨이라고 순탄한 성장의 길만을 달려 온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성장하기까지 에릭슨에게도 남다른 고통이 있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에릭슨은 유선전화기 및 교환설비 제조사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특히 전화기 사업분야 만큼은 유럽 시장을 석권하여 소비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1980년대이후 에릭슨은 정보통신과 관련된 다양한 사업 분야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미 전화기 제조를 통해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관련 사업으로의 다각화가 쉽게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정보시스템, 사무용기기, 컴퓨터 등 다양한 사업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IBM, 휴렛패커드, 마이크로소프트 등 각 사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는 초우량기업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결과는 당초 예상했던 것과 크게 차이가 있었다. 쉽게 성공할 것으로 예상했던 대부분의 사업이 정상궤도에 오르지도 못하고 적자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모든 사업 분야에서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 강력한 상대와의 경쟁에 필요한 역량이 부족했다. 설상가상으로 1990년대 들어 스웨덴은 금융위기를 겪게 되었고, 금융기관의 부실로 인해 에릭슨은 재원 조달조차 어렵게 된 것이다.
유사한 시기에 진출했던 이동통신 사업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다른 사업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신규 사업일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축적해 온 내부역량 및 사업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1990년대초 에릭슨은 급기야 중대한 결단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경험도 없이 백화점식으로 벌려놓은 사업을 정리할 때가 된 것이다. 각 사업을 전개할 역량도 축적되어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나름대로 갖고 있던 역량과 한정된 자원도 분산되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 해결이 쉽지만은 않았다. 내부역량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는 점에는 모든 경영진이 동의했지만 무엇을 승부사업으로 결정해야 하는가에는 저마다 의견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람크비스트(LARS RAMQVIST) 회장이다. 1990년초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오른 그는 앞으로의 시장 전망, 경쟁 상황, 내부역량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이동통신 분야를 지목했다.
에릭슨이 갖고 있는 내부역량을 감안할 때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가를 고려한 결과였다.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오르기 전 이동통신 분야를 맡고 있었던 람크비스트 회장은 이 사업 분야에서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동통신 분야도 역시 1980년대초 에릭슨이 사업다각화의 일환으로 뛰어든 신규 사업 영역이었다. 미국 등 타 선진국에서도 미래의 유망사업으로 지목했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큰 투자나 사업의 구체화가 미흡한 실정이었다. 상대적으로 에릭슨은 핵심기술을 중심으로 꾸준한 R&D 투자를 이어왔고, 사업에 대한 안목도 키워 온 상태였다.
람크비스트 회장은 이동통신 분야의 시장 매력 또한 높이 평가하였다. 교환, 전송 등 유선 분야의 수요도 꾸준하게 이어질 것이 확실시되지만, 역시 미래의 통신은 무선을 중심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실제로 이러한 예측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GSM의 경우 1992년 7월 최초로 서비스를 개시한 이래 불과 3년여만에 80여개국으로 확산되었다. 가입자 수도 1994년말에 400만명을 넘어섰으며, 1995년말에는 1,200만명을 돌파하였다.
결국 많은 우여곡절 끝에 이동통신사업을 승부사업으로 선정한 에릭슨은 대대적인 사업 정리에 나서, 1980년대 초반 덩치를 키우기 위해 추진해 온 정보시스템, 사무용기기 및 컴퓨터 사업부문을 철수, 매각하였다. 1991년이후 약 1년 이상을 끈 승부사업 선정과 사업 철수 작업은 곧바로 경영성과로 이어졌다. 매출액과 경상이익이 무려 연평균 20~30%이상 늘어나는 성장세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승부사업 선정, 역량 집중
이와 같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물론 승부사업 중심의 사업구조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이 없는 사업을 철수하고 이로부터 확보한 재원을 승부사업의 핵심역량 축적에 적극 투자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에릭슨이 집중 투자한 승부사업의 핵심역량은 크게 세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첫째 무선기술 중심의 R&D력이다. 람크비스트 회장은 1990년대초 이익이 급감했을 때에도 이동통신 분야의 핵심기술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그는 심지어 전사 매출액의 20% 이상을 이동통신 분야 R&D에 투자해야 함을 강조했다.
에릭슨은 뛰어난 무선접속(RADIO ACCESS) 기술을 기반으로 장비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 결과 이 기술은 무선 뿐만 아니라 교환, 전송 등 유선 분야에까지 응용되어 에릭슨의 핵심기술로 자리잡았다.
또 표준 확보 경쟁에 일찍부터 투자하기 시작했던 에릭슨은 GSM을 통해 1990년대 초반 유럽에서 이미 표준화를 이루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아시아, 북미 등으로 세력을 확대하였다. 디지털 이동통신 분야에서 사실상의 표준을 획득한 셈이다.
사실상의 표준 획득은 현재 시점에서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래에 구현될 IMT-2000의 경우, 대용량 멀티미디어 정보를 전송할 수 있는 광대역 CDMA(W-CDMA)의 개발을 필요로 하며, 이 기술 개발에 있어서도 GSM 분야에서 획득한 사실상의 표준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 에릭슨은 한 발 앞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렇듯 차세대 기술 개발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도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R&D 투자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임을 감지한 에릭슨의 뛰어난 사업 통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사업 특성을 감안할 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핵심기술 분야의 R&D 역량을 기반으로 사업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실제로 1996년 에릭슨은 약 220억SEK(약 27억달러)를 R&D에 투자했다. 이러한 꾸준한 투자가 있었기에 현재 전세계 약 20여개국에 약 2만여명의 엔지니어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이다.
핵심역량은 철저히 키워
둘째 주력시장 중심의 현지화를 들 수 있다. 스웨덴의 인구는 900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내수시장을 타겟으로 해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찍이 에릭슨은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초기에는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지역을 확대해 나갔으나, 점차 중국, 러시아, 남미 등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사업을 확대하였다.
에릭슨은 세계 각 지역에 현지화된 수많은 지역회사(LOCAL COMPANY)를 거느리고 있다. 이들은 시장 정보 수집 및 고객 확보에 적극 활용될 뿐만 아니라, 현지화에 필요한 제반 인프라 구축에도 큰 공헌을 했다. 특이할 만한 강점으로 지목할 수 있는 것은 이 지역 회사들이 고도의 기술역량을 자체적으로 확보하고 있어 개발된 신기술을 현지 시장에 접목시키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이다. 1997년 총매출 가운데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이 넘는 약 56%를 기록했을 정도다.
글로벌 자원을 확보하는 데도 적극 투자하여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였다. 스웨덴 뿐만 아니라 해외 유수의 대학들과 공동 연구를 활성화하였으며, IBM, 인텔, 휴렛패커드, 마이크로소프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등과 전략적 제휴를 함으로써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었다.
셋째 기술 선도와 강력한 마케팅을 통한 시장 선점 역량이다. 컴퓨터, 사무기기 등 타 사업에 잠깐 한눈을 팔긴 했지만 신속한 한계사업 철수와 승부사업에의 집중으로 위기를 극복했고, 120여년을 넘게 통신 분야에 주력함으로써 획득한 기술을 십분 활용하였다.
이동통신사업은 시장 선점 효과가 매우 크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노키아, 모토롤라 등 세계적 이동통신 업체들이 전세계 각 지역에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에릭슨이 갖는 장점이 있었다.
그당시 에릭슨의 교환 장비 AXE의 경우 오랜 사업 경험을 통해 약 120여개국에 공급된 실적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러한 유선 분야의 기술은 이동통신사업의 기술 기반을 튼튼히 하는 데 일조를 한 것은 물론, 주력시장에서의 사업 경험을 그대로 전수받을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였다. 또 1981년부터 남보다 앞서 사업을 본격화한 이동통신 분야의 축적된 기술적, 비즈니스적 노하우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위기가 큰 교훈으로
에릭슨은 10여년의 외도 끝에 자신의 길을 정확히 찾았다. 컴퓨터, 정보 시스템 분야에서는 IBM, 휴렛패커드,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경쟁할 수 있는 내부역량과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단지 시장이 매력적이기 때문에 사업을 벌렸던 오류로 인해 지속적인 누적적자를 감수해야만 했다.
에릭슨이 이동통신 사업을 승부사업으로 선정한 절대 기준은 세계 시장에서 일등을 할 만큼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동통신 사업의 핵심역량을 명확히 규정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가를 검토한 후 승부사업으로 선정, 핵심역량 축적에 집중 투자했던 것이다.
에릭슨은 이제 세계 최대의 이동통신 시스템 제조회사, 세계 3위의 이동통신 단말기 제조회사로 통한다. 전세계 아날로그 시스템의 약 40%를 공급하고 있으며, 디지털 이동통신 단말기 시장에서 약 25%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위기 탈출을 위한 적절한 처방을 통해 이동통신 업계의 명가(名家)를 이룩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