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젠 노조가 배워야 할 때
김인영 금융부장 inkim@sed.co.kr
지난 98년 여름,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 노조가 장장 54일간의 파업을 단행했다. GM 노조의 장기 파업으로 미시간주를 비롯, 미국 중부와 캐나다 오대호 주변의 경제가 휘청거렸다. 덩치가 큰 미국 경제 성장률도 그해 2ㆍ4분기 1%대로 떨어졌다.
장기 파업의 결과는 노사 모두의 공멸이었다. 회사측은 두 곳의 압연공장을 아웃소싱하는 대가로 근로자들에게 직업안정자금 1억8,000만달러를 지급했다. 노조도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노조원들은 무임금무노동의 원칙에 따라 무려 10억달러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 당시 할리 셰이큰 버클리대 교수는 "회사가 졌다. 그러나 노조가 이긴 것은 아니다"고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그 후 9년간 미국자동차노련(UAW)은 파업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때 상처가 워낙 심했기 때문이다.
회사의 손실은 더 컸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일본과 유럽 회사에 비해 아웃소싱하는 비용이 커졌고, 따라서 국제경쟁력을 잃게 됐다. 그 후 크라이슬러는 독일 회사에 인수됐고 GM과 포드는 극심한 경영위기에 봉착한다.
이제는 미국 자동차 노조가 정신을 차렸다. 2000년대 이후 UAW는 노사 협상에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타이틀로 협상에 임한다. 그들은 타깃이 회사가 아니라 일본ㆍ한국 등 아시아 자동차임을 깨달았다. 협상의 주제는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복지 혜택을 줄이는 것이다. 노조측은 처음에 반대하지만 의료비와 연금 등 복지예산을 줄이지 않으면 수천명을 해고하지 않을 수 없다는 회사측 논리를 수용한다. 자칫 회사가 망하고 노조원 모두가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미국 자동차 노조는 3년에 한번 노사 협상을 벌이는데 2000년대 이후 3년치 임금인상률이 5%를 넘지 않았다. 한국 자동차 노조로서는 감히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노조의 암묵적 지지에 힘입어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재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여기에 연방정부도 보이지 않는 지원을 보낸다. 바로 달러 약세다. 워싱턴 정가에는 'GM의 이익이 미국의 이익'이라는 불문율이 작동한다. 일본과 독일 자동차의 공세에 시달리던 80년대 중반에 미국 정부는 10년간 달러 약세 기조를 유지했고, 그 덕분에 미국 자동차는 살아났다. 21세기 들어서도 자동차 회사들의 공공연한 로비에 조지 부시 행정부는 5년째 약달러 정책을 고수, 디트로이트를 지원하고 있다.
미국의 통화정책 공세를 이겨낸 대표적인 회사가 일본 도요타자동차다. 90년대에 일본 내수경기가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지고 엔화 강세로 가격경쟁력을 상실한 가운데 도요타의 노사는 마른 수건을 짠다는 심정으로 내핍경영을 하며 긴 세월을 이겨냈다. 덕분에 도요타는 21세기 들어 포드를 제치고 GM을 넘보며 세계시장의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정몽구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은 2일 신년사에서 "원화 강세 등으로 경영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며 올해를 글로벌 리더 도약의 원년으로 삼자고 강조했다. 그 다음날 노조는 울산공장에서 성과급을 내놓으라며 시무식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러면서 현대자동차가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글로벌 시대에 노조의 적은 회사가 아니라 국제경쟁이다. 미국과 일본 자동차 회사의 노사는 이를 일찍이 깨닫고 저만치 나가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 지도부는 더 늦기 전에 파업자금의 일부를 헐어서 GM과 도요타 노조를 방문해 국제노동운동의 흐름을 배워야 한다. 아울러 회사측도 이번에는 한발짝도 더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 불법 행동이 손해라는 것을 노조가 배우게 해야 한다.
입력시간 : 2007/01/04 1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