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씁쓸한 '소박(小舶)의 꿈'

[기자의 눈] 씁쓸한 '소박(小舶)의 꿈' 서민들 "대박 아닌 소박이라도…"정치권 민생 무관심 속 새 지폐 교환차익에 노숙도 불사 최형욱 기자 choihuk@sed.co.kr 관련기사 • 한은 화폐 교환창구 '북새통' • 새 1만원권 '대박' 현장…"전쟁에서 이겼어요" 1만원권, 1,000원권 새 지폐 발행을 사흘 앞둔 지난 19일 한국은행 본점 앞. 수십명의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서성이고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두터운 옷으로 중무장했고 라면상자 등으로 잠자리용 바람막이를 만들어놓은 사람까지 눈에 띄었다. 영락없이 노숙자들처럼 보였다. “22일부터 발행되는 신권의 앞 번호를 받으려는 사람들일까” 하는 생각도 언뜻 스쳤으나 “설마”하는 의구심이 앞섰다. 겨울 바람도 매서운데 사흘전부터 노숙할 리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자의 선입견이 틀렸다는 것을 아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줄을 선 사람들도 순식간에 300~400명으로 불어났다. 일부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로 밥을 짓거나 라면을 끓여먹기까지 했다. 머리를 식히려고 왔다는 고시생, 화폐 수집상 대신 나온 아르바이트생, 살림살이가 어렵다는 실업자와 노점상 등 사연은 다양했지만 목적은 단 하나, 바로 돈이었다. 그들은 3일만 고생하면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수백만원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한은이 당초 교환해주기로 한 화폐는 총 2만장. 1인당 100장씩 교환이 가능한 점을 감안하면 200번 이후의 대기자들은 기회조차 없었지만 “어떻게 되겠지”하면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다. ‘대박(大舶)’의 꿈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소박(小舶)’의 꿈들이었다. 이들은 자기들끼리의 몸싸움과 고성, 일대 아수라장을 겪고 난 뒤 바꾼 신권으로 과연 소박의 꿈이라도 이뤘을까. 23일 인터넷 경매사이트인 ‘옥션’에는 전날 한은에서 교환한 신권들이 하루만에 경매로 쏟아져 나왔다. ‘AAA’로 시작하는 앞번호의 100장짜리 돈다발 묶음은 액면가의 2~3배, 희귀한 번호는 50배 정도였다. 하지만 화폐 소유자가 부른 시초가에서 경매가가 멈춘 게 대다수였다. 지금으로서는 헛고생이 됐다는 얘기다. 바로 그 시간 지난 4년간 참여정부의 한 축이었던 여당은 ‘책임정치’는 팽개치고 신당 창당 논란에 휩싸여있고, 정부는 ‘범정부 차원의 개헌 기구’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야당 역시 차기 대선주자간 신경전에 여념이 없었다. 서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불확실한 꿈에 몸을 맡기고 며칠간의 노숙도 마다하지 않는 판에 정치인과 정부는 정치 게임에 몰두해 있는 상황.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가 된다는 2007년 한국 사회가 신년 벽두부터 드러낸,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입력시간 : 2007/01/2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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