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07> ‘원령 정국’


기원전 9세기경, 일본의 관리들은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끊이지 않는 천재지변과 기근으로 인해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일본은 헤이안 시대에 접어들어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불교 문화와 발달한 고대 동아시아 문화권의 체제를 대변하는 왕권 제도가 확립됐던 시기입니다. 그전까지 부족들의 연합체에 가까웠던 일본은 본격적으로 체제를 정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라 전체가 ‘저주받았다’는 공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천황의 정치 고문이자 유명한 학자였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眞)라는 인물이 죽은 뒤 ‘원령’이 됐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왕위 계승을 놓고 장난을 쳤다는 이유로 오늘날의 규슈 지역에 있는 다자이후로 좌천당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조정에서는 미치자네를 기념할 수 있는 신사를 각지에 만들고 그것을 ‘덴만구’(天滿宮)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원령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날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학문의 신으로 대입이나 고시에 고민이 많은 학생들이 경배하는 인물 중 하나로 일본에서 존숭받고 있습니다. 자신들에게 고통을 주었던 원령에게 사후 명예회복을 시켜주고 숭배함으로써 위로한다는 정치 문화적 계산이 깔려 있었던 조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21세기를 사는 한국의 우리도 ‘원령 정국’을 맞이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 전 사망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이야기입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등지면서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뇌물 공여 리스트가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쪽지에서 거론된 사람들 모두 그를 ‘잘 모르는 사람’ 또는 ‘친하지는 않지만 수사에 대해 엄정한 입장을 취했던 나머지 섭섭하게 했던 모양’이라는 투로 일관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몇 가지 의문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개를 듭니다. 같은 지역 출신으로 정치적 연관성이 깊은 것 아니냐고 의심받는 현직 총리는 새벽부터 10여 차례 성 전 회장의 측근에게 전화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일반적으로 전화를 여러 번 하면 무언가 급한 일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로지 국정을 바로 세우는 것에만 신경 쓴다는 총리가 왜 새벽부터 태안군의회 부의장과 의장에게 여러 번 전화를 했어야 하는지 새삼 궁금합니다. 그도 ‘원령의 저주’가 무서웠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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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령의 존재 자체보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그것이 미치는 사회적 파급 효과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태를 정면돌파하겠다며 성역 없는 수사와 엄정한 대처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정보 공개와 투명한 수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남은 자들의 할퀴어진 마음을 위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죽은 사람도, 남은 사람들도 마음을 추스릴 수가 있습니다. 매년 여름마다 볼 수 있는 납량특집극에서도 늘 결말은 ‘인과응보’였습니다. 누군가를 억울하게 한 사람은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일종의 교훈이 현실에서도 이뤄지길 바랍니다. ‘원령 정국’이란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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