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인 미국과 중국 입장에서는 동아시아 패권 장악에 유리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기존의 유럽에서 아시아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러시아를 어떤 식으로든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러시아의 이 같은 동진정책은 지난 5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재집권하면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재집권하자마자 극동개발부를 설치해 동부개발에 나섰다. 8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세계 경제무대에 본격적인 도전장을 내민 데 이어 9월 초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하고 '극동발전전략 2025'를 발표함으로써 극동 개발과 이를 통한 동아시아 경제연대를 강화해나갈 것임을 강조했다.
이고르 슈발로프 러시아 제1부총리는 지난달 28일 "러시아는 유럽에 편중된 교역구조를 깨고 현재 23%에 불과한 아태 교역량 비중을 50%로 늘리겠다"며 동진정책을 재천명했다.
17일 러시아가 옛소련 시절 발생했던 북한에 대한 채권 110억달러 가운데 90%를 탕감해주기로 한 것도 양국경협을 새로운 단계로 격상시킬 발판을 마련해 한반도에서의 정치ㆍ경제적 지렛대로 삼고 더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북한 채무탕감을 통해 러시아가 나진항 등의 부두권 사용이나 북한을 통관해 남한으로 연결되는 가스관 건설권을 따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러시아는 물론 아시아의 경제적 가치만 보고 있는 게 아니다. 극동의 이웃으로서 G2로 성장한 중국과는 정치ㆍ외교적으로 전략적 협력 파트너 관계다. 중국 동북부를 통한 가스관 공급사업 등 굵직한 경제협력 관계도 중요할 뿐 아니라 영토분쟁 등으로 안보위기에 휩싸이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는 일도 절실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일본과 쿠릴열도를 놓고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는 또 중국과 함께 이란 핵개발 문제, 시리아 내전사태 등에서 공동전선을 형성해 초강대국 미국을 견제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중국과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다. 과거 미소 대립시절에 공산권이던 중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수교하며 소련을 등지는 등 구원의 역사를 갖고 있다. 경제는 물론 군사적으로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의 협력을 통한 견제도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도 미국에 맞서기 위해 러시아와의 극동 군사훈련 공동실시 등 제휴를 강화하고 있지만 미국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다각적인 교류 및 소통ㆍ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아시아에서의 미중 대립구도가 확연해지는 가운데 러시아도 본격적으로 가세하며 강대국 간 복잡다단한 이해관계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