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월요초대석] 내가 본 오거돈 장관

김인세 부산대총장 <br>털털하면서도 매사에 준비성 철저 추진력 뛰어난 뚝심의 '부산 사나이'

8년간을 지루하게 끌어오던 신항 명칭이 ‘신항’으로 결정됐다는 내용이 실린 신문을 보고 다시 한번 웃었다. ‘역시 오거돈이다.’ 그였기에 이 같은 일이 가능했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그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오거돈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역시 ‘뚝심’과 ‘배짱’이다. 그의 뚝심은 부산에서 정평이 나 있다. 나에게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반드시 부산에 유치하겠다고 말하던 그의 얼굴이 지금도 떠오른다. 빙긋이 웃으며 덤덤하게 얘기하는 그의 얼굴에 ‘내기라도 한번 해볼까요’라고 써 있는 것 같아 잘해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언젠가 그의 수첩을 본 적이 있다. 수첩에는 그의 하루 생활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뒤편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까지 꼼꼼히 적어놓았다. 또 한편에는 유머 몇 개가 적혀 있었다. 부산아시안게임에 북한을 초청하기 위해 금강산을 찾은 오 장관이 첫 회의에서 냉랭한 북한 관리들을 진한 농담으로 녹였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그의 메모 습관과 철저한 준비성으로 북한 관료들의 긴장을 풀었던 것이다. 그는 부산에서 한마디로 엘리트다. 제일 좋다는 학교를 모두 졸업한 뒤 행정고시 합격, 해군장교 복무에다 행정학박사 학위까지 가지고 있고 지금은 장관이다. 하지만 그의 겉모습이나 생활에서 그런 엘리트 냄새는 맡을 수 없다. 돼지국밥에 소주 한잔을 즐기고 구내식당 김치 담그는 아주머니들과 김치 맛을 평가하며 담소를 나누는 스타일이다. 90년대 초 부산 동구청장 시절 부산역에 노숙자가 많아져 민원이 늘어나자 그는 노숙자 대책을 색다르게 세웠다. 넓은 부산역 광장에 작은 공연무대를 만들고 나무를 심도록 했다. 자연스럽게 부산역 광장을 노숙자의 광장에서 부산시민의 문화공간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언젠가 나에게 슬며시 내놓은 그의 CD음반 사진을 보니 1년 전의 그와 지금의 그가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변신 중이어서 앞으로 어떻게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모르지만 그는 언제나 ‘부산 사나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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