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프랑스의 추한 현실

우리가 기억하는 파리는 이제 없다. 어느 가수가 노래했던 ‘샹젤리제 거리와 생미셸성당, 오래된 보졸레 와인’으로 기억되는 파리의 이미지는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지난달 27일 시작돼 3주째 지속되고 있는 소요사태로 파리의 추한 현실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는 반대하지만 당신이 말할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겠다”던 볼테르가 그토록 사랑했던 파리에 자유와 관용의 정신은 없었다. 실업률이 20%대로 프랑스 평균의 2배가 넘고 취업 원서에 아랍계 성만 써도 탈락되며 종교적 의무인 히잡(머릿수건)을 쓰고 학교에 가면 퇴학을 강요 당하는 것이 600만명에 달하는 무슬림(이슬람교도) 이민자들이 프랑스에서 감내해야 하는 삶이다. 그래서 동포 청소년 두 명이 경찰을 피하려다 감전사 한 것을 계기로 일제히 들고 일어난 프랑스 무슬림들에 동정심마저 생긴다. 프랑스 정부는 소요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강온 양면 전략을 펴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더욱 강하게 ‘채찍’을 가하되 세계의 눈을 의식해 약간의 ‘당근’을 준비한 정도다. 프랑스 하원은 15일(현지시간) 국가 비상사태를 3개월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 이번 사태에 연루된 불법체류자를 강제 추방하고 소요사태 가담 청소년의 부모들에도 경제적 제재를 가하겠다며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협박을 했다. 강경책만 내놓기가 머쓱했는지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유화책을 슬쩍 끼워넣었다. 그의 유화책이 이처럼 평가절하를 받는 것은 10년 전 대선공약으로 내놓은 무슬림에 대한 복지강화 정책이 대통령이 된 뒤 공허한 메아리가 됐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 최신호(12일자)는 커버스토리에서 ‘더 많은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번 프랑스 소요사태의 교훈이라고 전했다. 영국과 미국은 지난 10년간 꾸준한 성장을 바탕으로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성공하면서 이민자들을 끌어안을 수 있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관용이나 포용 등과 같은 추상적인 단어가 아닌 ‘일자리’라는 극히 현실적인 대안이 소요사태로 인해 드러난 프랑스의 추한 현실에는 더 어울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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