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수필] 돌고 도는 기피색깔

崔禹錫(삼성경제연구소 소장)요즘 이름 앞에 무슨 색깔이 붙으면 가장 끔찍할까. 아마 「개혁적이지 못하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세월에 따라 제거 대상 색깔이 변하는데 그것은 대개 끗발잡은 쪽에서 정한다. 50년대 자유당 정권때 가장 끔찍스러운 말은 「사상이 의심스럽다」라는 것이었다. 아주 노골적으로는 빨갱이라는 말을 썼지만 약간 붉은기가 있다는 말만 들어도 기피, 척결의 대상이었다. 입신출세는 물론 일상생활에도 막대한 지장이 있었다. 해방 직후엔 친일파라는 말이 치명적이었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붉은데 대한 공포와 기피는 60년대 공화당 정권 때도 계속되고 지금도 다소 남아 있으나 반공정신이 너무 투철하면 냉전형(冷戰型)인물이라고 오히려 기피된다. 70년대 10월 유신(維新) 후엔 「국가관이 없다」는 말이 횡행했다. 국가관이 뭔지 모르지만 한번 없다고 낙인찍히면 모든게 끝장이었다. 80년 5공 들어선 정의사회(正義社會)가 기세를 올렸다. 정의(正義)란 말이 크게 유행하여 정의사회에 안 맞는다고 하면 별볼일 없는 사람이 되었다. 5공 초기엔 개혁이란 말이 등장하고 당시 실세들이 「개혁주도세력」을 자처한 적도 있었으나 곧 사라졌다. 6공땐 민주화란 말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다. 무슨 단체 이름엔 반드시 민주란 이름이 붙고 민주인사가 아니면 행세를 못했다. 그러나 구호는 그렇게 요란해도 대체적 기조는 5공과 비슷했다. 93년 문민정부 시대의 치명적 색깔은 「때묻었다」는 것이었다. 무슨 때인줄 모르나 좌우간 때가 묻으면 안되었다. 때가 묻고 안묻은 것은 과거 무슨 벼슬을 했느냐의 여부로 가름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5, 6공때 큰 벼슬을 한 사람은 문민정부엔 안쓴다는 원칙을 정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때묻지 않은」 대학교수나 민주투사들이 대거 입각하여 여러 전례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 들어선 「개혁적 인물」이 우대의 기준이 되고 있다. 만약 개혁적이 아니란 말을 들으면 새 자리를 못얻는 것은 물론 있는 자리에서도 쫓겨나야 한다. 그런데 개혁적 인물의 기준이 모호한데 요즘은 나이가 많이 참작되는 것 같다. 나이든 사람은 비개혁적, 나이적은 사람은 개혁적이란 등식이 통용되는 것 같다. 요즘 정부나 은행, 국영업체 인사하는 걸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많겠지만 달리 과학적 반증자료가 없으니 그렇게 흘러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기야 지금 나이들어 기피대상이 된 사람들도 옛날 젊었을 땐 세대교체니 하여 한창 기세를 올린 세대들이니 별로 억울해 할 것도 없겠다. 또 지금 한창 떠오르는 세대들도 얼마 안지나 구세대라고 규탄받을 때가 올 것이니 세상은 돌고 도는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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