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9일] <1263> 에즈라 코넬


웨스턴 유니언(WU)과 코넬대학교. 매출 49억달러를 올리는 거대 통신회사 WU와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코넬대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설립자가 동일인이다. 에즈라 코넬(Ezra Cornell). 1807년 뉴욕에서 도공의 아들로 태어난 코넬은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어린 나이부터 목수 겸 기계공으로 일하면서 발명과 개량에 재주를 보였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먼 외척이라는 가문의 후광과 관계없이 일급 기술자로서 자수성가의 기반을 닦았다. 기술과 성실성을 인정 받은 그는 뉴욕주 이타카에 위치한 제분소 매니저를 맡았으나 회사가 방직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망해버려 직장을 잃었다. 실직한 그는 전신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마침 땅을 파는 쟁기와 나무에 구멍을 뚫는 발명품을 갖고 있었기에 막 태동한 전신사업에 남보다 쉽게 참여할 수 있었다. 전신주를 세우는 작업에서 돈을 번 그는 대서양을 해저전신 케이블로 연결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1851년 웨스턴 유니언 전신회사를 설립했으나 얼마 안 지나 꿈을 접었다. 1855년 여름날 열차 창문을 열고 무심코 내놓은 팔이 나무에 스쳐 부상을 입은 후 회사를 넘기고 가족이 있는 이타카로 돌아갔다. 48세에 사업을 접은 그의 선택은 자선사업. 폐교 직전인 뉴욕 주립농업대학을 이타카로 이전하는 조건으로 50만달러와 부지 300에이커(121만㎡)를 기증, 1865년 코넬대로 바꿨다. 말년의 코넬은 철도사업에 투자했으나 ‘1873년 공황’의 여파로 실패한 뒤 1874년 12월9일, 67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사업가로서 코넬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명문 코넬대가 존속하는 한 그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된다. 코넬의 일생은 삶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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