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대기업] 자산 해외매각 '버티기'

대기업들이 보유자산이나 지분의 해외매각을 늦추고 있다.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초기의 『팔아야 산다』는 목소리는 흐지부지되고 『급할 게 없다. 헐값에 팔지 말고 버티자』는 현실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무슨 잔꾀(?)냐』며 기업들의 구조조정 의지가 퇴색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고 기업들은 정부의 현실을 외면한 「몰아붙이기식」 구조조정 정책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기업들은 상거래라는 것은 서로 합리적인 가격결정에 의해 성사돼야 하는데 정부가 「무조건식」으로 매각을 종용하는 것은 기업이익 등 경제적 측면보다는 건수 위주의 구태적 발상을 가진 때문이라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정부가 팔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 높일수록 외국인들의 매입가격은 더욱 낮아져 기업이나 국가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재계의 이런 판단에 확신을 준 사례는 LG그룹 외자유치건이다. LG그룹은 TFT-LCD(액정표시박막트랜지스터) 사업의 지분매각을 위해 필립스사와 1년여 동안 협상을 진행하다 최근 성사시켰는데 침체를 보이던 TFT-LCD 경기가 호황을 보이면서 매각대금은 당초 5억달러 안팎에서 16억달러로 크게 늘어났다. 경기가 회복세를 보일 때는 빨리 팔수록 손해라는 인식에 힘을 실어준 사례다. 이에 영향을 받은 듯 한화의 한화유통 잠실부지와 한솔의 강남 역삼동사옥 매각이 최근 취소됐다. 구조조정 모범회사로 꼽히는 이들 그룹은 이미 현금유동성을 상당히 개선시켜 숨을 돌린데다 시간이 지나면 더 비싸게 팔 수 있다는 계산을 한 셈이다. 또 대우도 최근 ㈜대우의 수유동 부지와 대우중공업 보령 헬기공장부지 매각 계획을 유보했으며 경주힐튼호텔 해외매각 일정도 내년 이후로 넘겼다. 매입을 원하는 측의 제시가격이 너무 낮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대신 연말까지의 유상증자 계획을 3,000억원 늘렸다. 일부 운영자금을 증시를 통해 조달한 후 적당한 인수기업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궁지에 몰려 자산을 헐값에 매각하면 싸게 파는 것도 문제지만 구조조정 이후 경쟁력이 떨어지는 악재가 될 수 있다』며 『자산매각에 신중한 기업들의 자세를 구조조정 의지가 퇴색한 것으로 몰아붙이는 시각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계나 금융계는 물론 IMF체제 직후 일찌감치 자산매각을 통해 외자를 도입,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한 기업들의 시각은 다소 차이가 있을지언정 대체로 정부측과 일치한다. 국내증시가 최악의 침체를 보이던 지난해 8∼9월 외자유치를 확정지은 굿모닝 증권(전 쌍용증권)의 경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싼 값에 팔렸지만 어느 누구도 실패한 외자유치로 보지는 않는다. 지난 2월 전경련 주최 세미나에서 당시 쌍용투자증권 기획실장은 『해외매각으로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현금흐름이 좋아져 신용도가 급속히 회복됐다』며 적절한 조치였음을 강조했다. 남일총(南逸總)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도 『우리 기업들은 너무 싸게 판다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정작 외국투자가들은 매각대상이 빚투성이고 매력도 적어 오히려 비싸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제값받기 위해 시기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안 팔기 위해 핑계를 대는」 게 아니냐는 의미다. 학계는 기업들이 자산매각을 철회한 데 대해 사상 초유의 저금리 체제에서 자금흐름에 숨통이 트이면서 나타난 버티기전략의 하나로 분석하고있다. /손동영 기자SON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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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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