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군사작전 개시 여부에 대해 부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지에서는 군사작전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며 실제로 일부 제한적인 군사행동이 벌어지고 있을 개연성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군사행동은 본격적인 인질구출 작전이라기보다 인질 억류 추정 지역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통해 탈레반과의 협상에서 심리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런 선제적인 군사행동이 결국은 우발적 또는 의도적인 소규모 충돌을 통해 본격적인 인질구출 작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 경우 이번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2일 일본 NHK방송은 아프간 정부가 1일(현지시간) 가즈니주의 피랍자 억류 추정 지역에 중무장 장갑차를 배치하고 주민들에게 군사작전에 대비해 피난할 것을 요청하는 전단을 뿌리는 등 군(軍)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아프간 정부 당국자는 이런 움직임이 인질구출 작전과 직접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만 사건의 장기화로 인질들의 건강악화가 우려되고 있는 상황에서 탈레반에 대한 압력을 한단계 강화해 인질석방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NHK는 분석했다.
또 이날 아사히(朝日)신문은 현지 주민들의 말을 인용해 탈레반 지도부 은신지로 추정되는 지역의 휴대폰 기지국이 1일 저녁부터 정전돼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됐으며 일부 아프간 군인들이 카라바그 지역에 있는 마을 두곳의 민가에 들어갔었다고 전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인터넷판도 이날 아프가니스탄 군과 경찰이 합동으로 미군의 지원을 받아 한국인 인질들이 억류돼 있는 안다르로 밀고 들어가자 탈레반 무장세력이 인질 3명을 끌고 파키스탄 국경 지역인 팍티카주로 피신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날 뉴스위크와 회견을 한 탈레반 고위 지휘자는 “탈레반이 인질 억류 지역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군사작전을 펴더라도 (인질 구출에) 실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나아가 “아프간 정부가 우리를 궁지로 몰아 인질 전원을 한꺼번에 살해하도록 해 이번 사태를 일거에 종결 지으려 하고 있다”며 아프간 정부의 협상 지연책에 대해 거듭 비난했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도 1일 국내 한 통신사와의 간접 통화에서 “아프간군의 움직임은 알고 있다”면서 “(따라서 군사작전을 해도) 우리는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 미군과 아프간군의 군사작전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아마디는 이날 “작전을 개시하면 인질을 모두 죽일 것”이라고 위협하고 “탈레반 지도자가 지역 사령관에게 ‘구출작전이 시작되면 인질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사실을 종합해볼 때 탈레반 역시 인질구출을 위한 미군과 아프간군의 최근 군사적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아프가니스탄 내무부는 1일 기자회견에서 “가즈니주에서 어떤 군사행동도 있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국방부는 앞선 기자회견에서 “인질구출 작전이 아닌 일상적인 탈레반 소탕작전이 있었다”고 밝혀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이와 관련,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문가인 칼 로비쇼는 2일 “무력을 사용한 인질 구출작전은 아주 힘들 뿐 아니라 결과도 좋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분명히 (현지에서) 군사작전 계획이 논의됐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다만 아프간 군대가 인질구출 작전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만한 능력을 갖췄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럽기 때문에 “미군이나 다국적군이 주도하는 주도면밀한 작전이 펼쳐져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