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의혹 규명 못하고 원점서 맴맴
김선일씨 피살사건 國調특위 청문회 끝나증인 대거출석불구 감사원 보고서 수준그쳐…일부의원 AP테이프 편집등 밝혀
고 김선일씨 이라크 피랍사건을 둘러싼 의혹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가 3일 사흘간의 청문회 일정을 끝냈다. 이번 청문회는 국민의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몇몇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
또 김선일씨 석방협상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라크인 변호사 E(여)씨와 직원 A(여)씨 등 가나무역 소속 이라크인 2명이 이날 외국인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국회 청문회에 출석,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원점만 맴돌았다=특위는 이번 청문회에서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과 이라크인 자문변호사 등 이라크 테러단체를 상대로 한 구명협상 당사자들을 비롯, AP통신 기자와 AP, 전화문의에 응한 외교관들,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등 사건의 핵심 증인을 대거 출석시켜 진실규명을 시도했지만 사건의 실체적 규명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야 의원들의 질의와 증인 및 참고인들의 답변도 이라크 현지조사까지 벌인 감사원 보고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일부 증인은 "그런 기억이 없다"는 식의 '모르쇠'로 일관, 청문회의 한계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외교부와 주이라크대사관 등 당국이 김씨의 피랍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김 사장이 구명협상을 제대로 했는지 여부와 AP가 피랍 직후 비디오테이프를 입수하고도 숨긴 이유 등 핵심 의혹에 대한 규명작업은 원점을 맴돌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부 의원들 '특종' 눈길=그러나 상당수 의원의 발로 뛰는 노력의 결과로 사건을 둘러싼 새로운 사실과 의혹이 드러난 점은 예상 밖의 성과로 평가된다.
우원식 의원은 피랍사실이 알려진 직후 외교부가 대사관에 정확한 피랍시점을 숨길 것을 지시하는 비문과 한국인과 한국군을 대상으로 한 테러단체가 이라크 내에 결성됐다는 첩보가 우리 당국에 보고된 사실을 폭로해 가장 주목받았다. 우 의원은 "이번 청문회는 여야를 떠나 정부가 미숙한 위기관리시스템을 고치지 않으면 제2, 제3의 김선일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자세를 갖고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한나라당도 박진 의원이 AP가 김선일씨 피랍장면을 담은 원본 테이프를 편집한 사실을 밝혀냈고 전여옥 대변인이 대사관측이 피살 이후인 6월24일 김선일씨에게 e메일을 발송한 사실을 알아내는 등 야당의 한계에도 불구, 잇따라 특종을 터뜨렸다. 이밖에 지난달 초 김씨 피랍 여부를 외교통상부에 문의한 AP통신 기자가 1명이 아니라 3명이라는 사실이 AP측 증인의 주장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청문회 사상 첫 외국인 증언=이라크 테러단체를 상대로 김선일씨 구명협상을 벌였던 가나무역 소속 이라크인 변호사 E씨는 3일 청문회에 출석, 관심을 모았지만 김 사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으로 일관해 의혹해소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E씨는 3일 "6월18, 19일 사이에 파병 발표가 있었는데 납치자들은 현재 파병된 군대를 철군하라는 게 아니라 한국군의 (추가) 파병결의 철회를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E씨는 "김선일씨는 (피랍 후) 3주 동안 안전하게 있었다"며 이같이 말하고 "이를 봐도 납치자들이 원래부터 김선일씨를 죽이려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거듭 주장했다.
E씨는 "김씨가 납치된 첫 방송이 한국에서 나간 후 한국정부가 서둘러 파병재확인 원칙을 발표했다"면서 "정확한 어구는 기억나지 않으나 한국정부는 파병은 반드시 해야 한다, 조건 없이 석방하라고 요구했는데 이는 (김씨를) 죽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씨는 "(한국정부의 발표는) 한명을 위해 정책을 바꾸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는데 납치단체와 저, 중간협상자, 이라크 국민도 그렇게 받아들였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들은 '차단막'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은 채 통역자와 귀엣말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의원질의에 답했는데 지난 13대 국회 때인 88년 6월 국회법 개정으로 청문회제도가 도입된 후 외국인이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청문회 증언대에 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창익 기자 window@sed.co.kr
입력시간 : 2004-08-03 1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