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4월3일, 이성태 당시 한국은행 신임 총재는 참 행복했다. 13년 만의 내부 승진에 한은 직원들은 환호했다. 내부 승진이라는 의미만으로도 한은의 독립성이 절반은 확보된 것처럼 보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2년 선배라는 '연줄ㆍ코드 인사' 논란은 자연스럽게 사그라졌다.
직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총재는 취임사에서 "중앙은행은 실기해서는 안 된다… 때에 따라서는 불확실성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그런 총재의 모습에 직원들은 갈채를 보냈다.
그로부터 4년 가까이 흐른 지금, 이성태 총재가 어느덧 임기를 끝내고 42년간의 중앙은행 생활을 정리할 날을 앞두고 있다.
지난 시간, 총재로서 그는 행복했을까.
돌이켜보면 이 총재는 재임 기간에 참 많은 일을 겪었다. 누구보다 우호적 환경에서 총재 자리에 앉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새로운 경제 사령탑의 노골적 반감에 시달려야 했고 '매파'인 자신의 색깔과 다른 사람들을 금융통화위원으로 맞이해야 했다.
정책적으로도 시련이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전 금리를 올린 일은 지금도 마음이 아플 성싶다. 자신이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했던 결단력이 스스로의 목을 조일 줄은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외풍(外風)에 가로막혀 '마지막 판단'을 주저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총재는 취임 당시의 행복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불행한 총재'일지도 모른다.
때문일까. 이 총재는 지난 11일 금통위 정례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차기 한은 총재의 자질을 묻는 질문에 "상황을 먼저 정확히 파악한 다음 실행에 옮기는 결단력도 필요하다"며 취임 당시의 단어를 다시 한번 꺼냈다.
임기만료를 앞두고 결단이라는 용어를 굳이 재차 강조한 것은 차기 총재에 대한 당부임과 동시에 자신을 향한 꾸짖음일 것이다.
이제 한달 남짓이면 차기 총재가 결정된다. 하지만 지금 거론되는 후보군을 들여다보면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대통령과 현 정부의 '예스맨'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한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대통령 측근이 총재로 오면 한은의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모습도 엿보이지만 '코드 정책'이 나올 것은 뻔하다.
이 총재의 불행이 차기 총재에까지 이어질지 걱정하는 것은 마냥 기우일까. 한은이 그토록 소중히 생각하는 독립성이 망가질까 벌써부터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