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 강희제 다룬 대하소설 출간
중국의 황제를 천자(天子)라고 부른다.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국가권력을 독점한 황제는 하늘과 땅 이외에는 두려운 것이 없는 지고의 존재이다.
백성들은 물론 신하들의 생사여탈권을 손에 쥐고 있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중국 황제의 권력은 신권(神權)에 버금갈 만큼 막강한 것이었다.
그런 중국에 백성을 섬기고, 인민의 민생을 살피기에 총력을 기울인 황제가 있었다. 요즘 고객만족 경영을 표방하는 기업가들이나 말하는 "정성으로 섬기고 서비스에 최선을 다 하겠다"는 국가경영 방침을 공공연히 표방했던 임금이다. 멀지도 않은 17세기의 일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청나라의 3대 황제 강희제이다.
62년간 보위를 지키면서 소수민족인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세계적인 대제국으로 일으켜 세운 강희제의 삶을 다룬 대하소설 '강희대제'(얼웨허 지음 한미화 옮김 출판시대 펴냄)가 출간됐다.
강희제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게 '강희자전'. 4만9,000여자가 수록돼 있어 오늘날 한문사전의 표본이 되고 있는 책이다. 이밖에 당나라의 시를 모은 '전당시', 주자학과 관련된 '주자전서'와 '성리대전' 등도 강희제의 지시로 편찬됐다.
그는 학구열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책을 보다가 피를 토할 정도로 면학에 힘썼는가 하면 한인 출신의 유학자에게서 주자학을, 예수회 서양인 신부로부터 자연과학을 전수받는 등 배움에 있어서 물불 가리지 않았다.
이처럼 학문에 열정적으로 매달린 강희제였지만, 결코 문약한 황제는 아니었다. 그는 대단한 무력을 과시한 황제였다.
'삼번의 난'을 진압함으로써 명나라의 잔존세력을 일소하였고 네르친스크 조약을 통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시켰으며, 타이완과 티베트를 중국의 영토에 복속시켰다. 현재 러시아 다음으로 넓은 영토를 확보하고 있는 중국의 지도는 이 시기에 대체적인 윤곽을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강희가 중국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독특한 통치철학에 힘입은 바 크다. 강희의 통치철학은 한 마디로 '국궁진력(鞠躬盡力)'으로 요약된다. '국궁'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구부린다는 뜻이고, '진력'은 온 힘을 다한다는 의미이다.
당시 동아시아 왕조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발상이다. 당연히 신하들이 "국궁진력이란 말은 신하가 쓰는 말이므로 황제가 쓰기에는 적당치 않다"며 펄쩍 뛰었다.
그러나 뜻을 굽힐 강희가 아니었다. 오히려 한술 더 떠 "짐은 하늘의 종이기 때문에 어떤 일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군주라는 것은 죽을 때까지 쉴 수가 없는 것이다"라며 묵묵히 국궁진력을 실천했다.
각설하고, 이제 청나라의 황금시대를 연 강희제의 삶과 철학이 담겨있는 소설 '강희대제'로 들어가 보자.
'강희대제'는 전체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 '탈궁'에서는 여덟 살 어린 나이에 떠밀리듯 즉위한 강희제가 오배를 비롯한 극악무도한 권신들과의 싸움에서 지혜롭게 승리를 거두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2부 '삼번의 난'에서는 청년기에 들어선 강희가 오삼계로 대표되는 삼번의 세력을 과감하게 제압하고, 명나라의 잔존세력을 완전히 뿌리뽑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3부 '천하통일'에서는 강희제가 몸소 원정길에 올라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고 네르친스크조약을 맺는 한편, 타이완과 티베트를 복속시킴으로써 진정한 천하의 주인이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4부 '후계자'에서는 말년의 강희제가 35명이나 되는 황태자 중에서 후계자를 올바로 세우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강희제는 국가경영이 민의와 국익에 충실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원칙을 우직하게 지켜내면서 사익에 눈이 멀어 패악을 일삼던 부패한 무리들을 몰아낸 성군이요, 난세를 가다듬어 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 젖힌 영웅이었다.
대하소설 '강희대제'는 지금 난세를 살아가는 우리나라 정치인과 기업인, 일반 국민도 한번쯤 읽어봄직한 책이다. 그리고 곱씹어 볼 일이다. 난세일수록 원칙을 바로 세우고, 지켜나가야 한다는 평범한 진실을.
문성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