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정부-중앙銀 정면충돌

은행-증권사 논란에 정치권·한은·재경부 가세<br>힘겨루기 우려속 '자통법' 내년 시행도 불투명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상 증권사에 대해 지급결제업무를 허용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중앙은행이 정면 충돌함에 따라 큰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이번 논란은 10일 한국은행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은행의 고유권한인 지급결제업무를 증권사에까지 허용하면 결제 시스템의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며 공개적으로 재정경제부에 직격탄을 날리면서 시작됐다. 반면 재경부는 “관련 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공청회 등의 절차를 밟고 있는 마당에 중앙은행이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시기상 맞는지 모르겠다”며 불쾌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다. 지급결제업무를 둘러싼 은행-증권사간 논란이 일부 정치권에 이어 한국은행과 재경부ㆍ금융위원회까지 가세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금융시장 발전 및 금융 소비자의 편의성과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가 자칫 이해관계자의 힘겨루기 차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지급결제 허용 문제에다 증권사의 자산운용 겸영을 놓고도 논란이 식지 않고 있어 자통법의 내년 하반기 시행은 갈수록 불확실해지고 있다. ◇한은, 왜 반대하나=한은이 지급결제 허용에 대해 반대의견을 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증권사가 지급결제권한을 갖게 되면 증권계좌의 고객예탁금도 은행계좌와 동일하게 직접 카드결제, 송금, 은행 ATM 출금 등을 할 수 있다. 한은은 “증권사의 재무건전성 취약 등으로 결제를 예정대로 하지 못할 경우 결제 리스크가 존재하며 그 효과는 연쇄적으로 파급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급준비율도 반대의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이다. 증권사들은 은행과는 달리 지급준비율 적립 의무가 없다. 그만큼 금리경쟁에 유리하다. 여기에다 지급결제 서비스까지 갖추게 되면 은행자금이 대거 증권사로 빠져나갈 수도 있다. 특히 금융권은 물론 정치권 내 수개월째 계속돼온 공방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해온 한은이 갑자기 말문을 연 것은 ‘지급결제 허용’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여론의 흐름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다급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자통법은 국회 재경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돼 있다. 재경위는 12일 공청회를 여는 것을 시작으로 법안을 본격 심의할 예정이다. ◇재경부, “증권사 지급결제 허용은 새 방식 아니다”=이 같은 한은의 주장에 대해 재경부와 금감위는 즉각 반박했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예금과 예탁금을 같은 기준에서 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고객의 증권계좌에 남아 있는 예탁금을 가지고 단순 결제기능만을 부여하는 것을 확대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증권사에 지급결제를 허용하는 것은 절대 새로운 방식이 아니라는 주장도 펼쳤다. 재경부 관계자는 “저축은행ㆍ신용협동조합ㆍ새마을금고 등 서민금융기관이 하고 있는 방식을 증권사에 적용하려는 것”이라며 “그렇다면 서민금융기관의 지급결제업무도 안정성이 훼손되고 있느냐”고 되물었다. 금감위의 한 관계자도 “은행들의 이기주의적 논리에 밀려 고객 편이성이 무시돼서는 안된다”며 반박했다. 한국증권업협회 역시 최근 건의문을 통해 “은행의 체크카드처럼 이미 확보된 현금 내에서 자금이체가 이뤄지기 때문에 지급결제 시스템 위험이 증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자통법을 원안대로 통과시키겠다는 증권업계의 행보가 활발한 가운데 증권업협회와 15개 증권사 사장단은 11일 오전부터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지급결제 허용 등을 담은 자통법에 대한 논의도 진행될 것으로 보여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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