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는 총을 통해 자유를 쟁취했습니다."
이달 초 미국 콜로라도주 스프링스에 위치한 한 총기 판매점을 방문했을 때 주인이 들려준 말이다. 그는 독립전쟁·남북전쟁 등에서 사용됐던 총 몇 자루를 꺼내놓고서는 이 총들 덕분에 '자유의 땅' 아메리칸 드림이 가능했고 이를 이어가기 위해 총기 소지가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는 애써 무시했거나 생략한 역사가 하나 있다. 콜럼버스가 개척했던 항로를 따라 유럽에서 건너와 신대륙 '정복'에 나선 백인들의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아프리칸-아메리칸', 즉 흑인이 쥐어져 있었다. 노예무역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흑인들이 신대륙을 '개척'하는 데 동원됐고 이때 형성된 두 집단 간 관계는 현 인종갈등의 역사적 DNA가 됐다. 총과 흑인은 정복과 개척의 시대에 백인들의 유용한 수단이었다.
지난 8월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미국이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18세 흑인 마이클 브라운을 백인 경관 대런 윌슨이 사살한 사건과 관련, 최근 백인 9명, 흑인 3명으로 구성된 대배심이 윌슨의 불기소 결정을 내린 뒤 이에 대해 항의하는 폭동 시위가 미 전역에서 이어지고 있다. 정복과 개척의 시대가 끝나고 '총'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흑인' 대통령이 등장했지만 '총과 흑인'이 얽힌 질곡의 미국 역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콜로라도에 이어 수도 워싱턴DC를 들렀다. 흑인 비율이 60%를 넘는 곳이지만 백악관을 비롯, 미 정부 건물이 밀집해 있는 중심가에서 흑인을 찾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흑인들은 이곳에서도 중심가가 아닌 외곽에 밀려나 있었다. 워싱턴에는 그 대신 각종 로비단체의 정치후원 자금이 잔뜩 몰린다. 여기에는 스프링스 총기 판매점 주인이 회원으로 있는 세계 최대의 로비조직 미국총기협회(NRA)가 "총에 더 많은 자유를 달라"며 뿌린 천문학적인 돈도 포함돼 있다.